●소신 뒤집기
鄭통일-金복지도 ‘지휘권 폐지’ 서명후 입장 번복
천 장관과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원 등 여권 핵심인사들은 15대 국회의원 시절인 1996년 10월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크게 제한하는 내용의 검찰청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특히 천 장관은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구체적 사건에 관한 지휘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했다.
천 장관은 1996년 당시 국회 제도개선특별위원회에 법 개정안이 회부됐으나 여당인 신한국당 의원들이 이를 반대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본회의에 회부하지 않는다’는 의결을 하려 하자 “이 법안을 폐기해서는 안 된다”고 ‘몸으로’ 가로막기도 했다.
그러나 동국대 강정구(姜禎求) 교수에 대한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발동된 뒤 이 총리는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신 전 의장은 “부당한 외압이라고 할 수 없다”고 일제히 천 장관을 감싸고 나섰다.
본보가 1996년 당시 검찰청법 개정안 원본을 확인한 결과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金槿泰) 보건복지부 장관도 대표 발의자는 아니었지만 당론에 따라 법안 발의에 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 김 장관은 17일 열린우리당 전국여성위원회 워크숍에서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을 적극 옹호했다. 당시 법안에 서명한 의원은 국민회의와 자민련 소속 의원 128명이었고 이 중 현재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은 13명이다.
말 바꾸기 | |
1996년 | 2005년 |
천정배 15대 국회의원 대검 국감 “구체적 사건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검찰 수사지휘권 폐지 요구” | →18일 국회 법사위 답변 “신념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
이해찬·신기남 15대 국회의원 ‘1996년 수사지휘권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검찰청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 | →이해찬 총리 17일 국무회의 “검찰은 법무부 장관에 의한 민주적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 |
→신기남 의원 18일 라디오 프로그램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장관이나 국민 대표가 통제를 가할 필요가 있다.” |
●엉뚱한 비교
사법처리 대상아닌 親日발언 빗대 처벌불가 주장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6일 열린우리당의 국회 법사위 소속 및 법조인 출신 의원들을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하는 가운데 천 장관의 지휘권 행사가 정당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승조(韓昇助) 고려대 명예교수와 국방전문가 지만원(池萬元) 씨의 발언을 비교 사례로 들었다.
한 교수는 과거 “일본 식민지가 우리나라 근대화에 도움을 줬다”고 말했고, 지 씨는 “일본군 위안부 80%가 가짜”라고 주장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노 대통령은 그 사례를 거론하며 “얼치기, 소영웅주의로 개인적으로 날뛰는 사람을 다 잡아 가둘 것이냐. (친일 발언으로) 국민적 공분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까지 구속해야 하느냐”고 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형사처벌 대상이 아닌 친일 발언과 실정법인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강정구 교수의 발언을 단순 비교한 것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난센스’라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법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출신의 여성들이 지 씨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여지는 있다.
비교의 오류 | |
비교 사례 | 오류 |
-일본 식민지가 한국 근대화에 도움 줬다고 주장하는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나 위안부 80%는 가짜라고 한 지만원 씨는 구속 수사하지 않는다.(노무현 대통령) | -현행법상 친일 발언은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사법처리 대상이 아님. |
●언론 탓하기
盧대통령 “일부언론 사상적 접근”… 책임회피
노 대통령은 16일 청와대 만찬에서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이번 사태를 사상적 취향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일부 언론이 불구속 수사관행 정착이라는 인권 문제를 이념 갈등의 문제로 몰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이 이후 여권 인사들은 일제히 ‘언론 탓하기’에 나섰다.
열린우리당 유시민(柳時敏) 의원이 17일 오전 상임중앙위원 회의에서 노골적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독극물에 가깝다”고 극언을 서슴지 않았고, 한명숙(韓明淑) 의원도 같은 날 오후 전국여성위 워크숍에서 “지휘권 행사는 인권을 보호하자는 일반론인데 언론이 다른 방향으로 매도하고 있다. 개혁 세력이 무슨 일을 할 때 언론 환경이 우리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배숙(趙培淑) 의원도 이날 행사에서 “우리가 열심히 하고 잘하는데도 언론환경이 좋지 않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신기남 의원은 18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꾸 정치권이나 일부 언론에서 지휘권 발동을 정치적 압력으로 몰아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언론 탓하기 |
“정치권이나 일부 언론에서 정치적 압력이라고 몰아가면 안 된다.”(18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신기남 의원) |
“법무장관의 수사권 지휘는 인신구속에 관한 것인데 일부 언론이 ‘검찰과 대통령이 충돌한다’고 한다. 조선·동아는 독극물에 가깝다.” (17일 당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유시민 의원) |
“우리가 열심히 하고 잘하는데도 언론환경이 좋지 않아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17일 당 전국여성위원회 워크숍에서 조배숙 의원) |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이번 사태를 사상적 취향 문제로 접근하는데 수사지휘권과 사상적 취향은 별개의 문제다.”(16일 열린우리당 율사 출신 의원들과의 회동에서 노무현 대통령) |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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