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南을 쥐고 흔들려는 北

  • 입력 2005년 10월 21일 03시 08분


북한의 대남(對南) 창구이자 현대의 대북사업 파트너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는 어제 “현대와의 모든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금강산·개성관광은 물론이고 2000년 8월 현대와 체결한 ‘7대 협력사업합의서’까지 무효화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 북은 비리 혐의로 물러난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문제를 또다시 거론했다. 하지만 속내는 현대의 대북사업 독점구조를 깨고 남측 기업들을 경쟁시켜 체제유지용 달러를 더 벌겠다는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북한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가 가까운 친척임을 들어 “현대 사태에 한나라당의 검은손이 뻗치고 있다”는 억지 주장까지 했다. 국내 정쟁(政爭)에서나 동원될 법한 음모론적 공세는 섬뜩함마저 느끼게 한다. 북한은 남한 내의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직접 깊숙이 개입·간섭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그제는 북측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의 ‘남북 집권당 교류 제안’을 비판한 신문 사설에 대해서까지 “철추(철퇴)를 내려야 한다”고 했다. 이보다 앞서 북한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정계복귀 불가론’를 펴고,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친미·보수세력의 중상모략의 희생자”라고 두둔하기도 했다.

이 같은 북한의 거침없는 행보는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해 온 우리 정부의 영합적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어제 아태평화위의 ‘현대 따돌리기’에 대해서도 통일부는 “당사자 간에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만 밝혔다.

청와대와 여당은 ‘북한 비위 맞추기’를 비판하는 야당 대표를 공격하기에 앞서 북한에 대해 ‘할 말을 하는’ 모습부터 보여야 한다. 북한의 버릇을 계속 나쁘게 만들다가는 “정치 똑바로 하라”는 질책까지 들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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