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1席도 못챙겨” 우울한 새판짜기

할말이 없어…
10·26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4개 선거구에서 모두 패하자 국회 열린우리당 의장실에 앉아 있는 문희상 의장(앞쪽)의 표정이 침울하다. 김동주 기자

‘열린우리당 전패(全敗), 한나라당 전승(全勝)’으로 끝난 10·26 국회의원 재선거 결과는 정치권에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재선 결과를 계기로 위기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빅카드’ 모색에 나설 공산이 크다. 한나라당은 이념 정체성에 관한 대여(對與) 공세의 고삐를 죄면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려 할 것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차기 대권주자들이 여야 정당의 전면에 나서면서 정치권 전체가 급속하게 대권 경쟁구도로 재편될 수도 있다.

이번 선거가 치러진 4개 지역은 당초 한나라당 2석, 열린우리당 1석, 민주노동당 1석이었다.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이 각각 1석씩 의석을 상실한 반면 올해 한나라당은 지난해 총선 당시 121석이던 의석을 이번 재선거를 통해 127석까지 늘렸다.

열린우리당은 예상했던 0 대 4의 완패였지만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국회 본청에서 TV로 개표 상황을 지켜보던 문희상(文喜相) 의장은 오후 10시경 당 의장실을 빠져나가면서 침통한 표정으로 “유구무언이다”라는 말을 세 번이나 되풀이했다.

문 의장은 “한두 석은 건질 줄 알았는데…”라며 더는 언급을 피했다. 대구 동을의 이강철(李康哲) 후보, 경기 부천 원미갑의 이상수(李相洙) 후보의 승리에 한 가닥 기대를 걸었으나 무위로 돌아간 것. 그나마 이강철 후보가 적지(敵地)로 꼽히는 대구에서 선전한 데 대해 “지역구도를 깰 수 있는 단초를 발견했다”고 자위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무슨 수를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더 많았다. 당장 문 의장을 비롯한 지도부 퇴진론도 나왔다. 하지만 “지도부를 바꾼들 그게 대책이 되겠느냐”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차기 대권주자인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金槿泰) 보건복지부 장관의 조기 당 복귀론에 대해서도 “그런다고 최악의 상황인 당 지지도가 회복될 수 있느냐”는 회의적 반응이 나온다.

당 역학구도 재편의 최대 변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 지도부와 범(汎) 친노(親盧) 진영은 ‘현 지도부는 유지하되 차기 대권주자들이 당에 복귀하더라도 지방선거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면 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놓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지역 선거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며 침묵을 지켰다. 노 대통령은 정치구도 전반의 큰 줄기를 바꾸는 구상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연말이나 내년 초 대폭 개각을 포함한 당-정-청(黨-政-靑)의 인적쇄신론에서부터 개헌 논의 조기 공론화에 이르기까지 온갖 정국 돌파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일단 민주당, 민주노동당과의 정책 공조를 강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정계 개편을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이번 재선거에서 여실히 증명됐듯이 수도권의 ‘호남 출신 유권자 표’와 ‘개혁 성향 표’가 분산돼서는 대권 전초전인 내년 지방선거도 필패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미 일부 중진 의원들은 ‘반(反) 한나라당’ 연대 모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