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록물 보관 실태]제헌헌법 필사본을 원본으로 취급

  • 입력 2005년 10월 28일 03시 01분


부산의 국가기록원 기록정보센터 지하창고에 보관된 제헌헌법을 관계 직원이 펼쳐 보이고 있다. 27일 감사원에 따르면 이 제헌헌법은 1948년에 만들어진 원본이 아니라 1963년에 작성된 필사본인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연합뉴스
부산의 국가기록원 기록정보센터 지하창고에 보관된 제헌헌법을 관계 직원이 펼쳐 보이고 있다. 27일 감사원에 따르면 이 제헌헌법은 1948년에 만들어진 원본이 아니라 1963년에 작성된 필사본인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연합뉴스
《정부의 공공기록물 보관 수준은 현재의 제헌헌법이 원본인지 필사본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엉터리’였다. 공공기록물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인식이 빚은 결과다. 감사원은 27일 ‘공공기록물 보존 및 관리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24개 정부 부처에 대해 7개 분야, 42건의 지적 사항 사례를 소개했다.》

▽‘엉터리’ 보관 실태=행정자치부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1962년 말까지 사용한 정부의 첫 국새(國璽)를 분실한 것으로 감사 중 밝혀졌다. 국새 견본과 주형도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가짜 국새가 만들어져 허위로 정부 기록물을 만들어 낼 가능성도 제기됐다.

1999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현행 국새는 한국원자력연구소 검사 결과 내부 균열이 생겼다. 이 때문에 행자부는 새 국새를 만들어 2008년 2월부터 사용할 방침이다.

행자부는 또 이승만(李承晩) 대통령 시절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 관련 문서와 재외공관보고서 등 15만여 쪽의 자료를 국가기록물로 지정하지 않아 이들 자료는 현재 연세대 우남관에 보관돼 있다.

분실된 대한민국 첫 국새. 연합뉴스

국방부는 대통령 결재 문서 178건 중 중요 기록물 41건을 분실했다. 반면 비밀보호 기간이 지난 문서 6만1466건을 비밀기록물로 보관해 오다 행정력 낭비라는 지적을 받았다.

한국은행은 1948년 이후 발행된 61종의 화폐 중 22종의 화폐 기록물을 잃어버렸다. 화폐 기록물은 화폐의 도안 문양 제안자 등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자료다.

가치가 없는 자료를 보관하는 경우도 있었다. 국가기록원(옛 정부기록보존소)이 보존 중인 대통령비서실 관련 기록물 12만1538건 가운데 73.9%인 8만9818건은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출력한 것들로 단순한 민원 신청 사항이어서 사료 가치가 거의 없는 것으로 지적됐다.

▽기록물 관리가 부실한 까닭=공공기록물 가치에 대한 담당 공무원의 무지가 근본적인 이유다. 2000년 기록물관리법이 생기기 전까지는 ‘공공기록물’이란 개념조차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다.

국가기록물관리위원회가 2000년 발족했지만 지난해 11월 단 한 차례만 회의를 개최했을 뿐이다. 역대 국가기록원장(옛 정부기록보존소장 포함) 28명의 평균 재직 기간은 14개월에 불과해 일관성 있게 사업을 추진할 수 없었다.

지방기록물은 중앙에서 관리하는 것보다 지방에서 관리하는 게 효율적이지만 현재 16개 시도는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을 설치하지 않았다.

기록물관리법에 따르면 공공기관에서 만들어지는 각종 기록 중 준영구(50년 이상) 보관 대상 기록은 각 기관이 9년 동안 자체 보관한 뒤 국가기록원으로 넘겨진다.

국가기록원은 대전청사 지하에 마련된 1400여 평 규모의 서고와 부산의 2000여 평 규모의 서고에 이를 보관한다.

하지만 두 곳의 보존서고 공간이 부족해 2003년 말 현재 76만여 준영구기록물이 국가기록원으로 넘겨지지 못한 채 해당 기관에 임시 보관돼 있는 실정이다.

▽대책과 조치=감사원은 우선 역사적 의미와 소장 가치를 감안해 분실된 제헌헌법 원본과 국새를 최대한 찾아볼 것을 주문했다.

감사원은 또 행자부, 법제처 등 관계 부처에 주요 기록물을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할 때 진위를 철저히 파악하도록 권고했다.

국가기록원은 2007년 말 준공을 목표로 경기 성남시 수정구에 590만 권을 보존할 수 있는 ‘성남서고’를 건립 중이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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