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무슨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시대정신’이나 ‘선출된 권력’을 들먹거릴 일도 아니다. 인간 도리와 예의의 문제다. 여든셋 고령의 추기경께서 무거운 입으로 고언(苦言)을 하셨으면 쉰셋 젊은 총리는 그 속내야 어떻든 ‘걱정을 끼쳐 드려 송구스럽다. 염려하시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해야 했다. 그것이 사람 된 도리이고 최소한의 예의다. 하물며 ‘정치적 발언’이라니. 그야말로 지난날의 은혜를 무례로 갚는 망덕(亡德)이 아닌가.
김 추기경은 1968년 4월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된 후 “교회는 주일만의 교회가 아닙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 천주교는 신앙을 구하러 교회에 찾아오는 방식이었으나 앞으로는 사회 속으로 찾아가는 자세로 교회를 이끌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김 추기경은 그때 이미 당신이 ‘정치적 발언’을 할 수밖에 없는 시대 상황을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후 김 추기경은 유신독재로 치닫는 박정희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이 터진 뒤 김 추기경은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박 대통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종교는 마음을 순화하고 위안을 주는 것이지 정치에 간여하는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잠시 후 김 추기경이 답했다.
“마음이 순화되고 순수하기를 원하신다면 이 세상이 윤리 도덕적으로 향상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윤리 도덕은 저 혼자 지킨다고 향상되는 게 아닙니다. 인간 사회, 인간관계, 윤리 도덕에서 정치 경제를 빼놓고 그것이 과연 설 수 있느냐, 모든 것을 빼놓은 종교 윤리 도덕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문일석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에서)
전두환 정권에서도 김 추기경은 중요한 고비마다 ‘정치적 발언’을 피하지 않았다. 1986년 10월 20일 김 추기경은 로마에서 대통령 직선제 실시를 주장했다. 당시로는 ‘폭탄 발언’이었다. 이듬해의 4·13 호헌 조치에도 정면으로 반대했다.
김 추기경은 5공 말기에 저질러진 인권 탄압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1986년 7월 21일 명동성당에서 ‘성(性)고문 사건’의 권인숙 양을 위한 미사를 집전했으며, 1987년 1월 26일에는 ‘박종철 군 추도 미사’에서 전 정권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 도대체 있느냐, 아니면 총칼의 힘뿐이냐 하는 회의가 근본적으로 야기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다시 국민인 우리에게 이런 정권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중대한 양심 문제를 던지고 있다.”(김정남 ‘진실, 광장에 서다’에서)
이 총리를 비롯해 민주화운동 이력으로 현 정권 요직에 포진한 인물들은 거의가 ‘민주의 목자(牧者)’였던 김 추기경의 음덕(陰德)을 입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어른의 쓴소리가 듣기 싫다고 ‘정치적 발언’으로 폄훼해서야 도대체 그들이 전유물(專有物)처럼 내세워 온 민주화운동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인간이 인간다운 도리를 잃는다면 민주화는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노 정권에서 민심이 등을 돌린 것은 단지 경제 때문만은 아니다. 서툴고 능력이 부족하면 겸손하기라도 해야 하건만 독선과 오만으로 편을 가르고, 민심을 거역(拒逆)하며, 막말과 독설(毒舌)을 쏟아내 스스로 권위와 신뢰를 잃은 탓이 더 크다.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끈다고 했습니다. 하오나 추기경님, 저들의 눈과 귀에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오니 추기경님의 큰 사랑으로 부디 저들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전진우 논설위원youngji@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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