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부터 4시간 40분간 계속된 회의에서 150여 명(의원은 118명)의 참석자 중 발언에 나선 35명 대부분이 당 지도부의 퇴진을 주장했고, 10여 명은 청와대를 대놓고 비판했다.
특히 일부 친노(親盧) 직계를 제외하고는 색깔과 계파 구분 없이 대통령 비판에 나섰다.
집권 여당의 공식 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노골적 비판이 쏟아진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에도 집권 3년차인 2000년 정권 핵심이 관련된 각종 게이트가 터지자 ‘개혁파’ 그룹이 당시 권노갑(權魯甲) 최고위원 등 대통령 측근의 퇴진을 요구한 일이 있긴 하지만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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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권 관계자들은 노 대통령이 강조해 온 ‘당-청 분리’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 심각하게 볼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개혁도 보수도 청와대 비판 한목소리=대통령정무비서관 출신 문학진(文學振) 의원이 당 지도부와 청와대를 싸잡아 비난하며 먼저 포문을 열었다. 문 의원은 “나도 대통령을 모셨던 사람이지만 대통령은 오류가 없는 사람이냐. 대통령이 신(神)이냐. 당이 왜 자기 색깔을 내지 못하고 청와대만 따라가느냐”고 질타했다.
유승희(兪承希) 의원은 “재선거 패배의 근본적인 원인은 청와대에 있다. 민생정책에 신경 쓰지 않고 연정론이나 얘기했기 때문 아니냐”고 가세했다. 그는 “청와대가 이번에도 ‘(선거 결과를 놓고) 당은 동요하지 말라’고 하고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문제도 거론했는데 청와대가 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동철(金東喆) 의원은 “국민이 정서적으로 대통령의 발언을 때로 품위 없고 경솔한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했고, 이호웅(李浩雄) 의원은 “청와대가 당정 분리 원칙을 지킨다고 강조했지만 진짜 중요한 사안은 전부 청와대의 결정을 따랐다”며 거들었다.
일단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말문이 터지자 좌석에서는 “맞는 말이지” “잘했어” 같은 추임새와 박수가 나왔고, 발언의 강도도 점점 세졌다.
안영근(安泳根) 의원은 “대통령의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안 그러면 지도부 바꿔도 또 그렇게 간다. 대통령이 당을 부속물로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내에선 온건 중도로 분류되는 안 의원은 “강정구(姜禎求) 교수 파문에 따른 대응도 잘못됐다. 극좌파와 분명한 거리를 둬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통령은 예스맨을 바꿔라”=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인적 쇄신론으로 이어졌다.
우원식(禹元植) 의원은 “당에서 민생정책 개발에 힘을 쓰겠다고 입장을 밝힌 날 노 대통령이 대연정을 발표하는 바람에 국민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며 “청와대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가로막는 사람을 쇄신해야 한다”며 ‘코드 인사’를 지적했다.
평소 대연정론을 강하게 비판해 온 임종인(林鍾仁) 의원은 “1차 책임은 청와대에, 2차 책임은 (연정론을) 말리지 못한 당에 있다. 대통령에게 ‘지당하십니다’라고만 말한 사람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석현(李錫玄) 의원은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의 뻣뻣한 답변 태도를 지적하며 “총리의 국회 발언 태도가 바람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유인태(柳寅泰) 의원 등 몇몇 참석자가 “정기국회도 있고 하니 내년 2월까지만 기다리자. 아니면 수습할 때까지 일주일만이라도 기다려 보자”고 중재안을 내며 수습에 나섰으나 압도적인 강경 목소리에 파묻혔다. 친노 직계로 분류되는 여타 의원들도 ‘성토 일색’ 분위기 때문인지 섣불리 발언대에 나서지는 않았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盧대통령 ‘동요말라’ 메시지 하루만에…충격받은 청와대▼
청와대는 28일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총사퇴한 데 대해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27일 “열린우리당은 동요하지 말고 정기국회에 전념해 달라”고 메시지를 던진 지 하루 만에 여당 지도부가 퇴진 압력에 밀려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의 메시지는 ‘문희상(文喜相) 의장 체제’로 정기국회 폐회 때까지는 그대로 가자는 것이었는데 상황이 달라진 것 아니냐”며 곤혹스러워 했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가 노 대통령의 임기 후반 ‘레임덕’(권력누수현상)을 가속화시키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이병완(李炳浣) 대통령비서실장과 김병준(金秉準) 정책실장,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비서관, 이호철(李鎬喆) 국정상황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정무관련 회의를 갖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은 회의 후 브리핑에서 “열린우리당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며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고 어려운 상황인 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라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산적한 정책 현안들이 차질 없이 처리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도 이날 사태에 대한 보고를 받았으나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청와대의 대응은 열린우리당 지도부 퇴진 사태가 벌어졌지만 민생 관련 법안의 안정적인 처리를 위해 정기국회 폐회 때까지는 여권 전체가 힘을 합쳐 갈등을 수습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때 개최 여부가 불투명했던 29일의 당-정-청 12인 수뇌부 만찬 회동은 예정대로 열린다. 김 대변인은 “열린우리당 문 전 의장이 참석한다는 뜻을 전해 왔고 만찬도 예정대로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 文의장도 ‘단명’…盧心의 전달자役 7개월안돼 낙마
열린우리당 역대 당의장 재임기간 | |
당의장 | 재임기간 |
정동영 | |
2004. 1. 11~5. 17 (4개월 7일) | |
신기남 | 2004. 5. 17~8. 19 (3개월 2일) |
이부영 | 2004. 8. 19~2005. 1. 3 (5개월 15일) |
임채정 | 2005. 1. 5~4. 2 (2개월 28일) |
문희상 | 2005. 4. 2~10. 28 (6개월 26일) |
이 점에서 그의 낙마는 노 대통령의 당내 장악력 약화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4월 2일 전당대회를 통해 노무현 정부 3년차 집권 여당의 키를 잡았던 문 의장은 취임 초 ‘속풀이 해장국’ 정치를 펼치겠다며 민생투어에 나서는 등 실용주의 노선을 견지했다.
그러나 취임하자마자 치른 4·30 재·보궐선거에선 국회의원과 기초자치단체장 광역의원 등 정당 공천이 적용된 23개 지역 선거에서 한 명도 당선자를 못 내는 참패를 기록해 타격을 받았다.
문 의장은 당내 개혁파와 실용파의 노선 갈등을 ‘통합의 리더십’으로 극복하려 애를 썼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서열 2위의 염동연(廉東淵) 상임중앙위원이 지도부를 비판하며 사퇴하는 파동을 앉아서 지켜봐야 했다.
이후 정국의 주도권은 청와대로 넘어갔다. 노 대통령은 정국 돌파를 위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카드를 들고 나왔으며 문 의장은 이를 따르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연정론에 대한 여론이 갈수록 악화되고 경제 악화에 따른 민심 이반 현상이 심각해지자 당내에서는 정동영(鄭東泳) 통일, 김근태(金槿泰) 보건복지부 장관의 조기 당 복귀 주장이 나오는 등 문 의장에 대한 불신 기류가 팽배해져 갔다.
문 의장은 “2년 임기를 채우겠다”며 퇴진론을 일축하며 의욕을 과시했지만 10·26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또다시 ‘4 대 0’으로 완패하자 더는 버틸 수가 없게 됐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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