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병우]조선시대보다 못한 국가기록물 관리

  • 입력 2005년 10월 31일 03시 04분


‘국가기록물 관리 엉망’, ‘제헌헌법 원본 사라졌다’, ‘최초 국새도 사라져’ 등의 제목이 충격적이다. 감사원의 국가기록 관리 실태 감사 결과를 보도한 신문 기사들이다. 대통령이 결재한 중요 문서와 화폐 발행 기록, 심지어 외국과 체결한 조약문서 원본의 일부도 분실됐다.

국가기록원에 마땅히 이관해야 할 기록물을 자체 보관한 문제점도 드러났다. 예를 들면 제1∼5차 개정 헌법의 원본은 법제처의 서류함에 보관되고 있었고 국가기록원은 필사본을 진본처럼 보존하고 있었다. 대통령 관련 기록의 70% 이상은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출력한 것이어서 사료가치가 거의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도 이번 감사에서 지적됐다.

우리나라의 기록 관리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미 몇 차례 시민단체에서 기록 관리 실태를 조사했고 언론에서도 보도했다. 그러나 이번 감사는 24개나 되는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한 전면적이고도 전문적인 것이었고 정밀하게 감사하지 않고서는 밝혀 낼 수 없는 사실을 많이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정부는 활동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국민에게 제공해야 할 책무를 안고 있다. 첫째, 기록 관리는 정부 행정의 투명성을 이끌며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한다. 기록은 행위의 실명제를 보장하므로 공직자들이 책임을 지고 깨끗하게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둘째, 기록은 새로운 정책 입안 등에 참고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지식정보사회에서 기록은 바로 힘이며 국가가 생산한 가치 있는 지식정보는 국민이 활용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이처럼 귀중한 지식정보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은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다. 따라서 기록을 소홀히 하는 것은 국민은 물론 역사에 대한 배신행위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에겐 원래 기록문화가 취약한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고려는 건국 초기에 사관(史館)을 설치했지만 우리는 1969년에야 정부기록보존소를 설치했다. 조선시대에는 정부 각 기관과 지방에까지 겸직 사관(史官)을 뒀지만 우리는 올해 처음 중앙부처에 기록연구사를 배치했다.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치밀한 기록도 기록이려니와 보관 방법도 놀라웠다. 개국 초부터 멸실에 대비해 4부를 작성해 전국 4곳의 사고(史庫)에 나눠 두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전주 사고를 제외한 모든 사고가 불에 타자 다시 4부를 인쇄해 분산 보관했다. 사초(史草)를 보존하기 위해 사관들이 관직은 물론 생명까지 걸었다는 기록도 허다하다. 조선왕조실록이 1997년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선조들의 이처럼 철저한 기록정신 덕이었다.

기록 관리의 부실은 정부의 비민주성과 기록의 중요성에 대한 공직자의 인식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생겨난 결과이다. 비민주적인 정부에서는 책임을 두려워해 기록을 생산하지 않고, 생산한 기록도 관리하지 않으며, 보존하고 있는 기록도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 이 같은 관행이 건국 이후부터 공직사회의 문화로 굳어져 온 것이다. 이 때문인지 공공기록물관리법이 제정된 2000년 이전에 근무한 전직 대통령들은 직무 관련 기록물을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기도 하며 이 경우 현실적으로 자료 조사가 불가능하다.

부실한 기록 관리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공공행위를 철저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시스템의 도입과 전문가의 적절한 배치, 기록 관리 표준의 도입과 인프라의 구축, 관련법과 제도의 정비, 정보 공개의 확대 등을 추진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공직자는 물론 사회 전체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기록문화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안병우 한신대 교수·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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