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김정일 ‘폭군’지칭]답변하다 ‘속마음’ 노출

  • 입력 2005년 11월 8일 03시 02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평소 잦은 말실수로 유명하다. 하지만 6일 브라질 차세대 지도자들과의 대화에서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을 ‘폭군(tyrant)’으로 표현한 것은 그저 말실수로만 보이진 않는다. 김 위원장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기본적인 인식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과연 이 발언이 낳을 파장까지 염두에 둔 것인지에는 의문이 많다. 부시 대통령의 ‘폭군’ 발언은 대화 도중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설명하면서 나왔다. 제5차 북핵 6자회담을 사흘 앞두고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신경을 자극하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했다고 보기에는 분명히 무리가 있다.

그동안 김 위원장에 대한 부정적 호칭이 낳은 파장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6자회담이 장기간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올해 4월 28일 백악관 기자회견 때 부시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위험한 사람’ ‘폭군’ ‘허풍쟁이’라고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냈다. 북한도 “부시는 불망나니, 도덕적 미숙아에 인간 추물”이라고 맞받았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이후 ‘미스터 김정일’로 승격해 호칭했고, 곧이어 1년 만의 6자회담 재개로 이어졌다.

한편으론 그동안 부시 대통령의 김 위원장 호칭이 북-미 관계의 변화와 함께 수시로 바뀌어 왔다는 점에서 ‘9·19 베이징(北京) 공동성명’ 이후 특히 경수로 제공 시기를 둘러싼 양측의 갈등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9일 시작하는 5차 6자회담의 핵심 쟁점도 경수로 제공과 핵 포기의 선후 문제다.

당장 관심사는 북한의 반응이다. 부시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대해 부정적인 호칭을 사용할 때마다 북한이 매번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다. 반응의 정도도 다양했다. 북한은 올해 초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폭정의 거점’ 발언을 6자회담 보이콧의 명분으로 한동안 삼기도 했지만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적도 많았다.

워싱턴 외교소식통들이 “부시 대통령의 이번 ‘폭군’ 발언이 6자회담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정부도 일단 공식 반응을 삼가며 이번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6자회담의 악재로 작용하지 않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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