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민칼럼]이런 홍보로 대선을 치르면…

  • 입력 2005년 11월 15일 0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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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홍보 담당자들은 스스로를 ‘오뉴월 돼지고기’라고 부른다. 냉장고가 없던 옛날, ‘여름철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던 말에서 나온 자조적 표현이다. 일이 잘돼 회사에 해로운 기사가 보도되지 않으면 경영진에 보이는 세상은 그냥 평온할 뿐이지만 고생한 보람도 없이 불리한 기사가 언론에 실리면 홍보 담당자들은 쏟아지는 내부 비판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칭찬은 적고 질책은 많은 자리인데도 ‘오뉴월 돼지고기’들은 오늘도 생색나지 않는 홍보 전장에서 기업을 지키는 본전치기 첨병 역할에 안간힘을 쏟는다. 홍보가 기업의 흥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홍보는 기업에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느 정부에서나 국민에게 정책을 홍보하는 일은 우선순위 높은 국정 업무다. 외교관들도 자국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 나라 밖에서 치열하게 홍보전을 편다. 그런데 북한은 참 별난 예외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수령님을 기쁘게 하는 것’일 뿐, 국민이나 국가 이미지, 명예 따위는 관심 밖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외적으로 ‘막가파’처럼 용감하다. 구미에 맞지 않는 보도에는 협박이 예삿일인데 최근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 남쪽 취재단에 대한 행패가 그런 사례다.

북쪽이야 으레 그러려니 하지만 남쪽 정부는 왜 그런 것까지 북한을 닮아 가는 건지…. 주류 언론에는 늘 날을 세우고, 국민에게는 구시대적이라고 투정하면서 대통령 비위 맞추기에 정신을 쏟는 것이 문명국의 대통령 참모가 할 일은 아니다. ‘기쁨조’ 노릇 하는 것이 홍보의 본질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잘못된 자세를 나무라지 않고 댓글이나 달아 주는 것도 국사에 바빠야 할 대통령에게 걸맞은 모습은 아니다. 그렇게들 하는 것이 시대에 앞서 가는 것이고, 그걸 보며 혀를 차는 국민의 의식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말인가.

‘정책상품’의 소비자인 국민과 언론은 갑(甲)이어야 하고 국정을 홍보하는 공급자로서 정부는 당연히 을(乙)이어야 하는데 참여정부는 그런 상식을 거부했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기사가 아니라 공급자 위주의 자화자찬 기사만 팔려는 것은 시장원리에도 안 맞는 오만이다. 이 정권이 국정 정보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유력 도매상’ 격의 동아 조선 같은 ‘유통조직’을 적대시하는 것도 양쪽 간의 상식 차이 때문이다. 두 신문에 기고를 하려면 사표를 각오해야 하고 이들 언론과 인터뷰하려면 감사부터 걱정해야 하는 것이 참여정부 관리들의 딱한 신세다. 독자가 수백만인 신문에 홍보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멍청한 기업인은 없다. 그러나 본보의 대권주자 연쇄 인터뷰 때 야권 인사들과 달리 정동영 김근태 두 장관은 권부의 이상한 분위기 때문에 그 혜택을 포기했다. 대통령 마음에는 들었을지 몰라도 두 장관은 더 많은 지지자를 얻을 좋은 기회를 발로 차버린 셈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때 그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사나운 개 콧등 성할 날 없다’는 속담처럼 이 정권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조직은 (국민에게 홍보해야 할 정책상품도 빈약한 터에) 연일 언론과 싸우면서 스스로의 이미지에 흉한 상처를 쌓고 있다. 하긴 정권이 투쟁적인데 홍보 종사자들만 온순하길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야당이 다음 대선에서 집권하고 싶다면 국정홍보처를 없애자고 주장하기보다 이 조직이 지금처럼 계속 싸움박질이나 하도록 놔두는 게 더 유리할 것이다. 정권이 역홍보(逆弘報)를 할 때마다 야당은 그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국정 역(逆)홍보처’나 ‘대통령 역(逆)홍보수석실’이 더 사실적인 명칭이 돼 버렸다.

하기는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실이나 국정홍보처만 탓할 일도 아니다. 재계에서는 회장이나 사장이 회사 홍보의 절반을 한다는 말이 있다. 경영진이 훌륭해서 기업이 잘되면 그 자체가 최상의 홍보다. 그러나 실적도 변변찮은 최고경영자가 시도 때도 없이 공연한 말로 분란만 일으키고, 안팎으로 다니며 싸움판이나 벌인다면 그런 회사 홍보 담당자들은 말 주워 담고, 해명하고, 뒷일 수습하느라 제품 홍보할 겨를이 없다. 그런 기업이라면 석 달도 버티기 어렵겠지만 정권에는 임기라는 게 보장되어 있으니 그들한테는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규민 경제 大記者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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