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재 런아시아 편집국장 글 전문

  • 입력 2005년 11월 17일 10시 03분


조기숙 홍보수석을 보면 차지철이 떠오른다

언론과의 대립과 갈등을 통한 홍보?

노무현 대통령은 “홍보가 곧 정책이다”라는 말로, 국정운영에 있어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DJ정권 시절, “호남이 대한민국을 다 해먹는다”라는 여론선동으로 모든 정책적 왜곡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진단이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부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정확히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은, 그 정부의 성공여부를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무현 대통령의 방향에 대해 청와대 조기숙 홍보수석이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이는 노대통령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노대통령과 조수석의 홍보전략은 처음부터 모든 문제를 언론탓으로 돌리며, 이들과 대립갈등을 조장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그러면서 친 정권 매체를 강력히 조직화했으니, 나름대로 성과라면 성과라 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대통령은 기자 간담회에서 “나를 위해주는 언론사는 단 한 군데도 없다”며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일반적인 언론계 내의 평가만 보자면, 몇몇 인터넷매체와 방송매체는 땡전 시대 이상의 친정권 편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게 여론일진데, 대통령은 이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체 뭘 더 어떻게 해달라는 것일까? 그래서 그런지 청와대는 틈만 나면 국정홍보브리핑과 같은 관영언론을 만들려 하고,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정홍보브리핑을 적극 이용하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역시 이러한 대통령의 지침을 따라가는 자가 조기숙 홍보수석이다. 조수석은 청와대 홈피, 블로그, 등을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글을 게재하고, 최근에는 노대통령과 공개댓글을 주고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행보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해서 홍보가 제대로 되겠는가? 인터넷 댓글은 힘없는 자들의 넋두리용 공간이다. 댓글을 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자신의 뜻을 밝힐 수 있는 일국의 대통령과 수석이, 기자 한 명의 글을 안주꺼리 삼아 비아냥거려놓고, “그냥 농담이었다”고 이야기한다면, 그 누가 그들에게 세금을 월급 주고 싶겠냐는 말이다.

홍보란 인내가 필요한 업무이다

일반 중소기업이나 문화산업기업, 혹은 대기업이라 해도 홍보란 인내가 필요한 업무이다. 바로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라는 불만을 내면에 참으며, 끝없이 언론과 소비자를 대상으로 자신을 알리는 노력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홍보업무를 떠나서, 개인의 인생사만 하더라도 자신을 곧바로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공적 업무로 얽힌 관계라면, 정확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알리는 것 이외에 수십 차례의 번외 술자리 정도는 가져야 서로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하물며 이념과 정책적 비전이 다른 수많은 언론을 상대해야 하는 청와대 홍보수석의 일이란 어떻겠는가?

조기숙 수석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라는 말로 언론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특히 조선일보를 주 타겟으로, 비판언론에 인터뷰 금지를 공직자 가이드라인으로 정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공직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라는 말로 그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언론에 재갈을 물리느니 하는 비판을 떠나, 이러한 정책이 과연 공직자를 보호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대통령, 총리, 홍보수석만 조용히 하면 된다

아무리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라 하더라도, 정부의 모든 정책을 다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보개혁진영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미 저만치 우편향되어있는 현 정권의 정책적 방향에 대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비판적일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이라크 파병과 분양원가 공개 반대였다. 언제 이러한 정책에 대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현 정부를 비판했냐는 말이다.

오히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경우 비판의 각은 주로 대통령과, 이해찬 총리, 그리고 조기숙 홍보수석에 쏠려있다. 이 역시 정책적인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의 철없는 가벼움, 총리의 막말, 홍보수석의 월권 등, 통치의 스타일 상의 문제로 감정적 대립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즉 대통령과 총리와 홍보수석만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면, 비판언론의 각도 매우 부드러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홍보수석이 너무 앞서가다보니, 비판적 언론은 물론 우호적인 언론조차도 고개를 절로절로 흔드는 일이 자주 반복되고 있다.

자신을 비판한 교수를 찾아 등산까지 따라간 조수석

이러한 조수석의 홍보행태는 그가 그의 직분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야기되는 듯하다.

강준만 교수는 조수석의 과거 학자적 태도와 정권에 참여한 이후의 지역주의를 보는 관점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홍보수석의 역할로 보자면, 그의 학자적 신념과 관계없이 참여정부의 입장을 가장 정확히만 알려주면 되는 것이므로, 그 개인의 신념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학자시절, 지역주의 문제가 별로 심각하지 않다는 주장을 했다손 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주의 때문에 나라가 거덜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걸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홍보수석의 역할이다.

그런데, 조기숙 수석은 놀랍게도, 칼럼 한 편 쓴 일개 대학교수를 만나러 전주의 높은 산까지 따라올라갔다. 그리고 기어코 그 자리에서 오해를 풀어냈다며 또 다시 인터넷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같은 전북의 한신대 김동민 교수는 강준만-조기숙 해프닝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문제는 핵심에서 벗어난 공방을 벌였다는 사실이다. 지식인의 정치참여 윤리라는 주제는 희미해지고 특정 지식인의 훼절 여부로 흐르고 만 것이다. 특히 조 수석은 자신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만 민감하게 반응했을 뿐 정작 중요한 공적 비판에 대해서는 간과했다.”

강준만 교수의 비판의 핵심은 청와대가 지역주의 해소를 위해 대여정을 제안했지만, 실상 지금껏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그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일국의 홍보수석의 할 일은 무엇인가? 청와대가 과연 그런 지역주의 조장을 해왔는지, 그걸 따져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그런데 조기숙 수석은 이를 모른 체 하며, 단지 자신의 학자적 신념과 정권 참여는 충돌하지 않는다는 점만 확인받고 돌아온 셈이다. 이런 홍보수석에게 평점을 주자면 얼마를 주어야 하는 것일까?

정권의 힘이 기울면, 역할분담이 무너진다

조수석은 홍보수석 임명 당시 “나의 전공을 살려 정무 일에도 적극 조언하겠다”며 취임 의지를 밝혔다. 즉 조수석은 처음부터 홍보 업무 이외의 것까지 넘보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대연정 제안 이후, 온갖 TV토론에 나선 조수석은 연정에 대한 설명을 하기보다는 자기의 정치적 이론을 알리는데 애를 쓰는 경향을 보였다. 그건 일반적인 홍보수석의 일이 아니다.

정권의 힘이 기울면 업무 영역의 역할분담이 무너진다. 권력자는 점차 자신의 말을 100% 따라주는 사람의 말만 듣게 되고, 그러면서 권력자가 고립되는 틈에, 이 권력을 활용하는 자가 나타난다.

한 명 한 명, 대통령의 곁을 사람들이 떠나는 사이, 어느새 조기숙 수석은 왕수석으로서의 지위에 오르고 있다. 이러한 조수석을 보면서, 박정희 정권 시절의 경호실장의 역할을 넘어 소통령의 일을 했던 차지철을 떠올리면 너무 무례한 것일까?

그렇다면 이렇게 설명하면 좋겠다. 전 언론매체에 연간 수천억원 대의 광고를 집행하는 대기업의 홍보책임자 중에, 언론에 나타나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리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지 검토해보라.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가장 좋은 홍보는 홍보담당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변희재 칼럼니스트 (런아시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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