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이 이 같은 ‘쓴소리’를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정치적 우군(友軍)이라 할 수 있는 누리꾼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 당선의 견인차 역할을 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도 사이버 공간에서 출발해 오프라인 조직으로 확대됐다.
집권 이후에도 노 대통령의 누리꾼 사랑은 계속됐다.
‘텅빈 연구실과 분주한 실험실.’ 휴일인 27일 황우석 교수의 연구실(위)은 텅 비어 있다. 그는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지방으로 간 뒤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 수의대 연구실(아래)에는 이날도 이병천 교수와 연구원들이 나와 실험에 전념했다. 이 교수가 이끄는 동물복제 분야는 큰 문제가 없지만 황 교수가 없어 줄기세포 실험은 손도 못 대고 있는 상황이다. 안철민 기자 |
노 대통령은 2003년 10월 인터넷 매체인 서프라이즈에 기고한 글에서 “네티즌은 내가 정치인으로 고비를 맞을 때마다 힘과 용기를 주는 든든한 후원자요, 버팀목이 돼 주었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3월 대통령 탄핵 사태 때 탄핵 반대 대규모 촛불 시위가 벌어진 데도 누리꾼들의 사이버 네트워크가 큰 몫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헌법재판소의 수도 이전 위헌 판결 때 누리꾼들은 헌재를 집중 공격해댔지만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MBC PD수첩 보도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에 분명히 선을 그음에 따라 누리꾼에 대한 대응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기고문에서 ‘PD수첩에 사이버 뭇매’란 제목의 한겨레신문 기사를 인용하며 “아, 그래도 우리 사회에 비판적 지성이 살아있구나”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일부 누리꾼들의 비판을 ‘마녀사냥식 공격’이라고 지적하며 “전문가들은 누리꾼들이 익명성에 기대 감정적 민족주의를 분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고 썼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MBC 보도에 대한 일부 누리꾼의 극단적 반응을 문제 삼았을 뿐이지 누리꾼 전체를 매도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털사이트 등에는 노 대통령의 글에 대해 비난성 댓글이 많았다.
‘다음’에는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했다. 대통령 된 게 누구 때문인데, 이제 대통령이 되었으니 누리꾼들 필요 없다는 말인가”(chynku)라는 글이, 동아닷컴엔 “자기 코드에 안 맞는다고 언론사 죽이기를 했던 노 대통령이 그런 말할 자격이 있나?”(ID sungup2000)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촛불시위 때는 왜 가만히 있었나요. 촛불시위는 애국이고 황 박사님 편든 것은 매국인가요”(ID choihoseon)라는 비판과 “광고 거부 사태와 같은 과잉행동은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ID dusxkr)는 옹호론 등이 엇갈렸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대통령이 언급한 ‘위압적 취재’ 내용은
“MBC PD수첩의 처음 취재 방향은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의) 연구 자체가 허위라는 것이었다…수십 명의 교수, 박사들이 황 교수와 짜고 사기극을 벌이고 있고, 세계가 그 사기극에 놀아나고 있었다는 말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줄기세포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여론을 보며’라는 기고문을 통해 MBC PD수첩을 이렇게 표현했다.
취재 과정에서 기자들의 태도가 위압적이고 협박을 하는 경우까지 있어서 연구원들이 고통과 불안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았다고도 했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처음 취재 방향은 연구 자체가 허위’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연구 성과가 진짜인지 확인할 수 있는 검사를 했느냐”, “관련 자료를 모두 제출해 달라”는 등 연구의 ‘진위’를 묻는 질문을 계속 했다는 것.
이 교수는 “아마 MBC에 제보한 사람이 세계 최초의 복제 개 ‘스너피’를 비롯해 우리 연구팀 성과 전체가 가짜라고 얘기한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PD수첩 측이 연구원들에게 위압적인 분위기로 취재한 것은 사실”이라며 “연구원들에게 마치 취조하듯 몰아붙이고 추궁하듯 질문해 심적 고통이 컸다”고 밝혔다.
특히 ‘이미 연구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연구원 1명씩 답변하게 요구하는 과정은 죄수 2명을 격리한 뒤 1명에게 자백을 요구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고 이 교수는 털어놨다.
PD수첩이 내보낸 ‘난자 기록장부’ 부분도 문제가 있다고 황 교수팀은 주장한다.
PD수첩은 난자 기록장부를 보여 주며 “2003, 2004년 황 교수 연구실로 들어온 난자의 적출 날짜와 시간이 적혀 있다. 기록된 것만 650여 개에 이른다”고 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방송에 나온 난자 기록장부는 한 연구원의 개인 실험노트였다”며 “방송을 보면서 누구의 실험노트인지 즉시 알았고 그가 방송에 제보했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한 개인의 실험노트를 연구팀 전체의 ‘난자 기록장부’라고 표현한 것도 문제지만 650여 개라는 난자 수가 어떻게 나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MBC PD수첩 측은 이에 대해 “취재 내용이 심각한 내용이어서 취재원이 협박을 당하는 것처럼 느낀 것 같다”며 “그러나 문제가 될 만큼 폭력적이지는 않았으며 정말 문제가 된다면 취재 과정을 방송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연구 자체가 허위라는 취재를 진행 중인 것은 사실”이며 “이번 파문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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