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언론 못믿어 독자적 ‘여론의 場’ 만드나

  • 입력 2005년 11월 3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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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ww.news.go.kr’에는 ‘가장 많이 본 기사’ 코너가 있다. 이 코너에는 29일 현재 ‘한국인은 사막을 저수지로 만들어야 직성 풀려’ ‘노 대통령, 다른 생각 용납되고 견제 균형 이룰 때 상식사회’ 등의 기사가 올라 있다. 이곳은 인터넷 언론 사이트? 아니다. 국정홍보처가 운영하는 ‘국정브리핑’ 홈페이지다.

#2 인터넷 포털 파란닷컴(www.paran.com)은 28일 뉴스 제공 서비스에 ‘청와대 섹션’을 개설했다. 이 섹션은 참여정부의 정책, 대통령의 요즘 생각, 청와대 사람들 동향 등 청와대가 자체 생산한 기사, 칼럼 등을 싣는다.

정부의 홍보 홈페이지가 스스로 기사를 생산하고 포털 사이트에 기사를 제공하는 등 ‘미디어화’하고 있다. ‘국정브리핑’은 신문의 인터넷 사이트와 비슷한 화면 구성을 하고 있으며 게시된 글을 ‘기사’ ‘속보’로 표현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인터넷 발달에 따른 새로운 대국민 홍보 방식’이라는 견해와 ‘정책 홍보가 아닌 개인 의견까지 정부 홈페이지나 기타 공식 채널에서 발표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동시에 대두되고 있다.

▽정보 유통의 새 방식인가, 일방적 홍보인가=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기고 형식으로 ‘줄기세포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여론을 보며’라는 글을 실었다. MBC ‘PD수첩’의 황우석 교수팀 난자 의혹 보도에 대한 노 대통령 자신의 소감을 피력한 이 글에는 “대통령이 나설 문제냐” “관용과 상식이 통해야 한다” 등 비난과 동의의 누리꾼 댓글 수만 건이 달렸다.

이달 초 한나라당의 국정홍보처 폐지 주장에 대해 “정부가 대안매체를 만들어 의제 설정을 해야 한다”고 노 대통령이 밝힌 것처럼 국정브리핑, 청와대브리핑을 대안매체로 만들고 포털을 활용하고 있다.

유일상(신문방송학과) 건국대 교수는 “노 대통령이 신문을 중심으로 한 주류 언론과 줄곧 갈등을 빚으면서 시민사회와 정부를 중개하는 미디어 역할에 대해 불신하고 있다”며 “취임 초기에는 인터넷신문 등 신생 미디어나 방송에 힘을 실어 주류 언론을 대신할 소통 구조로 삼으려 했지만 이제 그마저도 부족하다고 생각해 스스로 여론 형성의 장을 만든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 언론학자는 “블로그 등 1인 저널리즘이 가능한 시대에 대통령이 국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인터넷을 적극 이용하는 것은 새로운 정보 유통방식”이라며 “현재 진행형인 만큼 평가하긴 이르다”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는 “파란닷컴 기사 게재는 청와대 홈페이지 정보를 다양한 경로로 국민에게 전달하겠다는 뜻일 뿐 정권 홍보 의도는 없다”고 밝혔다.

▽검증 없는 ‘보도’=문제는 미디어의 형식을 띠었지만 미디어로서의 거름 장치가 없다는 것. 노 대통령의 MBC PD수첩 관련 기고에 대해 누리꾼들은 노 대통령이 일관성 없이 언론문제에 끼어들었다는 점을 가장 많이 지적했지만 PD수첩 제작진의 취재방식을 비판한 것을 문제 삼는 사람들도 많았다. 노 대통령이 이런 언급을 하려면 PD수첩의 반론을 들어 봐야 할 상황인데도 보좌진의 보고를 그대로 공표해 일방적 입장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미디어를 흉내 내면서도 ‘반론’이나 ‘검증’이 없기는 각 부처의 홍보 방식도 마찬가지다. 국정브리핑은 10월 28일 ‘언론 다시 보기’ 코너의 한 글에서 “10월 6일자 동아일보 A1, 3면에 보도된 ‘소가 웃을 소청(訴請)심사’ 기사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가 반론기고문을 실으라는 결정을 내렸다”라는 잘못된 사실을 올리기도 했다.

한 언론학자는 “국민은 정부 홈페이지에 실리는 내용을 ‘법제화된 정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저널리즘의 ‘게이트키핑’ 기능만큼 철저한 사실 검증이 필요하다”며 칼럼 식의 글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내용의 적실성과 효과=정부 홍보 홈페이지의 미디어화가 의제 설정 등 사회 공론장을 만드는 데 효과적이냐는 점도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대연정’의 경우도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이 직접 여론화하려고 했지만 국민의 호응을 받지 못했다.

최영재(언론정보학부) 한림대 교수는 “인터넷을 통한 의제 설정은 아직도 그 자체의 여론 형성보다는 신문 방송 등에서 한번 다루어진 뉴스가 다시 이슈가 되는 형태”라며 “아직까지는 인터넷이 거시적(매크로) 정책과 관련된 공론장이 된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황근(신문방송학) 선문대 교수는 “우리 사회의 대립되는 이슈는 정치권이나 언론 등 공론장에 맡기고 정부 사이트는 합의된 공론과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며 “정부의 공식 방침 대신 칼럼 등 개인의 의견을 올려 하나의 이해 당사자가 되면 사회 갈등을 더 확산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허영준(30) 씨는 “정책을 홍보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국정브리핑 등이 지금처럼 언론사 사설 같은 글을 싣는다면 선전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노변정담과 메일 매거진=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6분(미 동부시간)이면 라디오를 통해 주례연설을 한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라디오방송 ‘노변정담(爐邊情談)’으로 국민과 접촉했던 것을 1984년 레이건 대통령이 본떠 시작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 이후 9·11테러와 이라크전쟁, 허리케인 피해 등을 겪었지만 라디오 주례연설은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다.

연설 주제로는 이라크전쟁이 29차례로 가장 많았고 경제(28차례), 대테러전쟁(17차례) 등의 순이었다. 그러나 개인적 소회를 연설하는 일은 없다.

노 대통령도 취임 초기 KBS를 통해 매주 라디오방송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한편 대국민 접촉에 능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취임 후 2개월째인 2001년 4월 ‘메일 매거진’을 만들어 원하는 사람들에게 보내고 있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가 한창 치솟았을 때는 메일 수신자가 220만 명을 넘었으나 지금은 160만 명 정도로 줄었다. 그는 9월 치러진 총선에서도 ‘메일 매거진 201호’를 통해 유권자에게 정책을 알리고 총리 관저에서 매미 울음소리를 들은 느낌 등을 감성적으로 전달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평소 언론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메일 매거진 발행, 미국식 타운미팅으로 국민과의 직접 접촉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과 닮은꼴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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