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2일 공개한 신 전 원장의 공소장에서 국정원이 2002년 3월 언론사 사장과 기자 등을 도청한 사례 5건을 추가로 공개했다. 그러나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해 언론사 사주와 간부 등이 도청당한 사례는 공소장에 기재하지 않았다.
▽본보 보도로 확인된 사실=본보는 지난달 18일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이뤄질 당시 국정원이 조사 대상 23개 중앙언론사 거의 모두를 도청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본보 11월 18일자 A1면 참조
당시 보도는 전현직 국정원 간부와 실무 직원들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 등에 대한 취재를 토대로 이뤄진 것이었다. 이들은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는 정치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었으며 당시 언론사 사주와 간부들을 광범위하게 도청했다”고 진술했다.
이들 직원은 “2001년 당시에는 한두 언론사를 지목해 도청한 것이 아니라 23개 언론사 대부분을 광범위하게 도청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또 당시 임, 신 원장이 정권의 관심사항이었던 언론사 세무조사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언론사 동향 파악을 독려한 데서 언론사에 대한 도청이 비롯됐다는 진술도 있었다.
이런 사실이 본보에 의해 보도되자 검찰은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검찰 관계자는 11월 18일 공식 브리핑에서 “확인된 내용이라 하더라도 도청 대상을 보도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에는 형법의 명예훼손 조항과 같은 면책 사유가 없는 점을 유념해 달라”고 말했다.
본보의 보도 내용을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언론이 도청 대상과 내용을 보도할 때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당부의 발언이었다.
▽사회적 파장 우려해 미공개?=검찰은 2001년 8월 당시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해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 의원의 통화가 도청당한 사실을 신 전 원장의 공소장에 기재했다. 그러나 그 밖에 언론사에 대한 도청 사례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2001년 8월 17일 언론사 사주 3명이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구속되자 박 의원은 언론탄압 중단과 구속된 언론사 대주주 즉각 석방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김 전 대통령은 23일 박 의원에게 격려 전화를 했다가 도청당했다.
검찰의 수사 결과와 논리대로라면 당시 국정원은 언론사 세무조사의 직접 당사자인 언론사는 빼놓고 정치권 등 다른 분야의 동향만 파악한 것이 된다. 당시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가 검찰 수사로 이어져 언론사 사주 3명이 구속되면서 정권과 사회 전체의 관심이 언론사에 쏠려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국정원의 언론사 도청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검찰이 임, 신 전 원장의 공소장에 언론사 세무조사 당시 국정원의 도청 사례를 넣지 않은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국정원이 당시 언론사를 무차별적으로 사찰했다는 사실이 공개될 경우 불거질 수 있는 사회적 파장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불특정 다수의 국민을 무차별 도청한 사실이 밝혀져 신뢰와 위신이 땅에 떨어진 국정원과 김대중 정권에 또 하나의 큰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정치적 고려를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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