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청와대 등의 중재로 협상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여권과 검찰의 깊은 감정의 골은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일선 검사에서 총장까지 모두 불만=‘강골’보다는 ‘타협’ 이미지가 강한 정상명(鄭相明) 검찰총장도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등의 표현을 쓰며 강한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한 평검사는 여당에 대해 ‘화합할 수 없는 성격 차이’를 느낀다고 말했다. ‘화합할 수 없는 성격 차이’는 법원 판례로 확립된 이혼 사유. 여당과는 심리적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뜻이다.
이준보(李俊甫)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은 “우리는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해 난국을 헤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검찰에 대한 보복” 인식=검찰은 열린우리당의 안이 수사 실무상의 문제보다는 ‘검찰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정략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임동원(林東源) 신건(辛建) 두 전직 국가정보원장을 구속한 이후 수사권 조정 논의가 갑자기 활성화되기 시작해 결국 경찰의 입장을 전적으로 반영한 법안이 마련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 검찰 간부는 “2002년 대선자금 수사 이후 검찰 수사에 대한 정치권의 누적된 불만이 표출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16만 명에 이르는 경찰의 환심을 사려는 여당의 의도도 배경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이 침묵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검찰은 보고 있다.
▽불만속 협상안 제시=검찰은 강경 대응과 함께 협상 전략도 세우고 있다. 우선 청와대를 설득하고 여당 출신인 천정배(千正培) 법무부 장관을 통해 정부 입법을 통한 새로운 내용의 수사권 조정안을 마련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대검은 수사 지휘권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도 발표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검찰 사건 지휘를 담당하는 검사의 직위를 일선 검찰청의 부부장, 수석검사 등으로 상향 조정하고 △중요사건 지휘는 일선 검찰청의 부장이 맡도록 하며 △담당 검사가 경찰서를 방문해 피의자를 직접 심리, 구속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안대로라면 무엇이 달라지나=검사의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경찰의 부당한 수사를 즉시 시정하기 어렵고, 중복수사 등 수사권 충돌의 문제점도 발생한다고 검찰은 주장한다.
검찰은 가장 알기 쉬운 사례로 사실관계와 법률상 다툼의 여지가 많아 민원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교통사고 처리를 꼽는다.
경찰의 잘못된 법률 판단 등으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면 민원인은 검찰에 진정 등의 방식으로 사정을 호소하고, 검사는 경찰관 소환 등을 통해 사안을 검토한 뒤 시정을 요구한다.
하지만 수사 지휘권이 없어지면 검찰은 교통사고가 발생한 지 수개월이 지나 사건이 송치돼야만 사건을 검토할 수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한 검사는 “경찰이 이해 관계자의 민원에 따라 청탁 수사를 하거나 사건을 부당하게 끌더라도 이를 견제할 방법이 없어지고 경찰 비리에 대해 경찰이 봐주기 수사를 하더라도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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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檢잣대는 줄자 아닌 쇠자… 흥정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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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수용하지 않겠습니다. 원칙을 허물면서 흥정하지 않겠습니다.”
정상명 검찰총장이 6일 기자간담회에서 열린우리당이 마련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강경하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정 총장은 “50년간 상하 지휘 관계였던 검경의 관계를 어느 날 갑자기 대등 협력 관계로 바꾸라니…”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든 것은 ‘스텝 바이 스텝’(단계적)으로 가야 한다”며 “민주적 절차와 중간 단계 없이 가면 국민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정 총장은 “2003년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백서에도 민생범죄에 대해 경찰의 독자 수사권을 인정하려면 자치경찰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며 “그런데도 열린우리당이 느닷없이 안이란 걸 발표했다”고 말했다.
“협상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정 총장은 “검찰은 협상하지 않는다. 이런 불합리한 안을 놓고 협상을 한다면 국민이 검찰을 어떻게 보겠느냐. 검찰의 잣대는 줄자가 아니라 쇠자”라고 말했다.
정 총장은 “열린우리당이 왜 갑자기 밀어붙이는지 모르겠다”며 “도청 사건으로 두 전직 국가정보원장을 구속한 것을 포함해 검찰 수사와 관련된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기된 얼굴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검찰총장은 정치적 중립의 방파제 역할을 해 달라’고 나에게 귀가 따갑게 말하던 분(국회의원)들이 검찰을 이렇게 압박하다니…”라며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기도 했다.
정 총장은 “일선 검사들이 얼마나 억울하고 속이 상할지 생각하니 밤새 잠을 못 이루겠다”며 “지금 내 처지는 한마디로 ‘임중도원(任重道遠·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이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경찰의 功가로채 가던것 없애자는 것”▼
“경찰이 새로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수사의 97%를 담당해 온 경찰이 수사권도 갖지 못한 법과 현실의 괴리를 시정하는 것뿐입니다.”
허준영(許准榮) 경찰청장은 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대등 협력관계로 규정한 열린우리당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경찰에는 최소한의 요구조건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허 청장은 “경찰의 요구는 책임에 상응하는 권한을 달라는 것”이라며 “경찰이 수사권도 없고, 경찰 조서의 증거능력도 없으니까 경찰 조사를 받은 국민이 검찰의 재조사를 받아 인권침해 같은 게 생긴 것 아니었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수사와 기소 모두를 독점해 온 무소불위의 검찰이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았다”면서 “경찰이 수사의 개시와 진행만이라도 독자적으로 하고 검찰에서 이를 다시 감시하면 수사도 더 투명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검찰이 지금까지 경찰 수사를 훼방 놓고 경찰의 공(功)을 가로채 가던 것을 없애자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검찰이 여당의 안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는 것에 대해 허 청장은 “검찰이 최근 인권수사를 강조하면서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만으로도 이미지가 좋아지고 칭찬이 쏟아졌다. 법과 제도까지 바꾸면 국민이 얼마나 더 좋아할 것이냐”며 검찰의 유연한 대처를 주문했다.
그는 또 “국민이 밥그릇 싸움보다 더 무서운 게 ‘법(法)그릇’ 싸움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협상 거부를 선언한 검찰을 겨냥하기도 했다.
허 청장은 “올해부터 실시된 수사전문경찰관 제도 등을 정착시켜 수사 경찰의 자질을 끊임없이 향상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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