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주한 미 대사 중 가장 중량급으로 꼽히는 버시바우 대사가 외교적 파장을 초래할 수 있는 민감한 발언을 한 데 대해 한국 정부는 곤혹스러워 하며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버시바우 대사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조찬 토론회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미국 법에 따라 취해진 (대북) 경제 제재는 협상 대상으로 삼지 않을 것”이라며 “돈 세탁, 미화 위조 등에 대한 미국 법의 집행이 6자회담의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이 마약을 밀매하고 달러를 위조하는 상황에서 정치 제스처로서 금융 제재를 풀 수 없다”면서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대한 조치(북한의 거래계좌 폐쇄)를 통해 북한의 불법 행위를 일부 중단시키는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이어 일문일답에서 북한의 달러 위조에 대해 “(정권 차원에서) 그 같은 불법 행위를 한 것은 아돌프 히틀러 나치 정권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마약 밀매, 위폐 제조 등의 불법 행위를 중단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취할 조치를 묻는 질문에 “미국 법을 통해 세계 다른 나라의 불법 금융 활동을 단속하듯이 범죄 활동에 대한 북한의 지원을 단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발언은 지난달 중국 베이징(北京)의 5차 6자회담에서 북한이 미국의 금융 제재를 문제 삼아 9월 4차 6자회담 공동성명의 이행에 관한 논의를 거부한 것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최근 대북 금융 제재와 6자회담을 분리할 것임을 거듭 천명해 왔다.
버시바우 대사는 또 “북한 영변발전소에선 단 한번도 전력이 생산된 적이 없다”면서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 조치를 이행해도 경수로가 북한 에너지 제공에 가장 효과적인 지원책인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날 유럽에서 귀국한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은 “관련국들이 서로 (6자회담) 참여 상대에 대한 표현을 자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6자회담 재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6개국 수석대표의 비공식 회동을 연내에 제주도에서 갖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버시바우 대사의 이날 강성 발언과 관련해 김성한(金聖翰)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최근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는 핵, 북한의 불법 행위, 인권 문제들을 별도의 창구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핵 문제는 6자회담 팀이, 위폐·마약 제조 및 무기 밀매 문제는 핵 비확산팀이, 인권 문제는 제이 레프코위츠 대북 인권특사팀이 각각 맡아 동시 다발적인 ‘압박과 협상’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에 반발해 ‘미국이 금융 제재 회담을 회피하면 6자회담 재개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최근 밝혔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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