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코리아를 ‘거짓말쟁이 나라’로 만드는 정권

  • 입력 2005년 12월 24일 03시 06분


미국의 ‘북한 불법행위 대응팀장’을 지낸 데이비드 애셔 전 국무부 자문관은 한국 정보 당국자들이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거짓말쟁이들”이라고 비난했다. 3년 전부터 해마다 북의 위폐 제조에 관해 정보·외교 채널을 통해 설명했으며, 한국 당국자들은 예외 없이 이를 인정했는데도 딴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충격적이다. 북쪽 정권은 위폐를 만들고, 남쪽 정권은 이런 국제적 범죄를 감싸기 위해 거짓말까지 한다면 세계인들의 눈에 ‘코리아’는 어떻게 비칠까. 결국 우리 국민이 경멸의 대상이 되고, 국가 신뢰도 추락에 따른 피해를 봐야 한다.

북의 위폐 제조는 국가정보원도 이미 파악한 사실이다. 1998년 11월 6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종찬 당시 국정원장은 “적발된 북한 위조달러의 해외 유통 사례가 1994년 이후 13회에 걸쳐 460만 달러 이상”이라는 보고까지 했다. 이듬해 국감에서는 “북이 ‘2월은빛무역회사’를 비롯한 3개의 위폐 제조기관을 운영 중”이라는 보고도 있었다. 그런데도 최근 들어 정부는 “증거가 확실하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해 왔다. 안으로는 제 국민을 속이고 밖으로는 동맹국을 속이는 꼴이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뒤늦게 “북한의 위폐 제조가 확실하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제조 중단을 촉구했지만 나라 위신은 이미 땅에 떨어졌다. 애셔 전 자문관은 “한국 정부에 몇 년 전부터 북에서 오거나 북을 경유하는 컨테이너에 대한 철저한 검색을 요청했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이를 거부했다”고도 말했다. 이러다간 북의 불법행위를 거드는 공범으로 몰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북을 자극하면 6자회담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하지만 설득력이 없는 얘기다. 위폐 제조 범죄를 감싸기 위해 거짓말까지 하는 것이야말로 6자회담 진전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한미 관계 악화와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 증폭 등 국가적 손실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대응이다. 국가 간 관계에서 ‘정직하지 않다’는 말이 갖는 심각한 의미를 노무현 정부 사람들은 진짜로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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