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은 25일 “45년 동안 예산안 처리가 한 번도 해를 넘긴 경우는 없었다”면서 “한나라당을 제외한 야당과 연대해서라도 반드시 연내에 예산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한나라당에 사실상 ‘최후통첩’을 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이 사립학교법 개정안 단독 처리 등 국회 파행에 대한 책임 표시를 먼저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국회 등원에 부정적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면 정부가 준예산을 편성해 일단 예산을 집행하는 방법이 있다”며 “연내에 예산안 처리가 안 되면 큰일이라는 것은 과장”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제도 도입 이후 단 한 번도 실제로 편성된 적이 없고 관련 법조항도 미비한 준예산을 짜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사문화된 준예산 제도 부활하나
헌법 상 새해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하는 시한은 12월 2일이다. 예산안 확정 후 돈이 실제로 집행되는 데 한 달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부터 올해 예산안까지 16차례 예산안 중 12월 2일 시한 안에 통과된 것은 1993년, 1995년, 1996년, 1998년, 2003년 등 5차례에 불과하다. 올해 예산안은 지난해 12월 31일 밤 12시를 1시간 여 앞두고 간신히 통과됐으며 내년 예산안도 이미 시한을 넘겼다.
준예산 제도는 1960년 ‘4·19혁명’으로 의원 내각제가 도입될 때 만들어졌다.
당시 헌법은 회계연도 개시일 전에 예산이 편성되지 않으면 내각이 총사퇴하고 민의원을 해산하도록 정해 놨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운영이 계속되도록 정부가 전년 예산안에 ‘준해’ 최소한의 비용을 ‘준예산’으로 편성해 지출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대통령제로 바뀌면서도 준예산 관련 54조 3항은 유지됐다. 하지만 45년간 한 차례도 시행된 적이 없어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된 제도다.
의회 해산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준예산 제도는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았을 때 의회가 1주 단위로 예산을 짜주는 ‘가(假)예산 제도’와도 다르다.
○ 준예산 편성하면 무슨 문제 생길까
정해방(丁海昉) 기획예산처 재정운용실장은 “구체적 이행 지침이 없는 준예산이 실제로 편성된다면 ‘최소한의 국가 기능’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집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사회복지 시설에 대한 지원사업, 공공부문 일자리 지원사업, 보육비 및 육아비용 지원사업 등에 대한 지출은 본예산이 통과될 때까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산하기관 등도 확정되지 않은 정부보조금, 출연금을 기준으로 자체 예산을 편성해야 해 나중에 다시 한번 예산을 짜야 한다. 이에 따라 규모가 큰 사업은 추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裵祥根) 연구위원은 “이미 사문화된 조항을 근거로 준예산을 짜는 상황까지 가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국가경영에 도움이 안 된다”면서 “올해 예산안은 어떤 식으로든 회계연도 안에 처리하고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 미국식 가예산 제도 도입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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