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문에 과연 노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인지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대통령의 속내가 뭐냐”=노 대통령은 이날 “지금 제도상 대통령이 경찰청장에 대한 문책인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나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경찰청장의 임기제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노 대통령은 이어 “다음 나머지는 정치적 문제이며, 대통령이 권한을 갖고 있지 않으면 본인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어찌 보면 임기제 경찰청장을 중간에 경질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허 청장의 유임 쪽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문제’나 ‘본인의 판단’이란 용어를 쓴 점에 비춰볼 때 허 청장 스스로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발언 그대로 이해해 달라”고만 말했다. 허 청장에 대한 노 대통령의 호·불호 의사를 내비칠 경우 어떤 형태로든 시위농민 사건에 청와대가 휩쓸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의식한 듯했다.
노 대통령이 이날 “본인(허 청장)이 어떤 판단을 했을 때 대통령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것은 이미 본인의 판단이 아니고 대통령의 판단을 말하는 셈이다”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노 대통령의 메시지가 허 청장의 유임 쪽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고 해석하는 분위기다. 허 청장 본인이 사퇴설을 일축했기 때문에 청와대가 재론하기 어려워졌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엔 “허 청장 경질 이후가 만만치 않다”는 고민도 깔려 있다. 당장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 등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치안총수 낙마가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 외부에서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허 청장이 알아서 물러나라”는 쪽으로 해석하는 게 우세하다. 임기제라는 제도상 대통령이 나서서 문책할 수는 없지만 “문책하지 않겠다”고 재신임 의사를 밝힌 건 아니라는 얘기다.
대통령수석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는 “강제로 그만두라고 하지는 못하지만 당연히 본인더러 그만두라는 얘기 아니냐”고 해석했다.
앞으로의 여론 추이도 허 청장 인책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도 불구하고 허 청장에 대한 비난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을 경우 허 청장의 자진 사퇴론은 다시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이 “본인이 판단할 문제”라고 강조한 것은 ‘이런 상황까지를 감안해 알아서 하라’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왜 대국민 사과에 나섰나=노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결정적 계기는 물론 국가인권위원회의 26일 농민 사인(死因) 발표다.
인권위가 경찰의 과잉 진압을 지적한 이상 국가통수권자로서 가만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사과를 통해 파문을 수습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농민 사망에 대한 비난이 청와대를 겨냥하자 이를 조기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고 보기도 한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