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관]盧대통령의 ‘나 홀로’ 大選 독법

  • 입력 2006년 1월 5일 03시 05분


노무현 대통령은 5년 단임제가 도입된 이후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은 지지율(조사에 따라 20∼30%대)로 임기 4년차를 시작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 입에서는 “참여정부에는 레임덕이 없다. 임기 마지막 날까지 인사권을 행사할 것이다”는 방약무인한 얘기가 거침없이 흘러나온다.

‘당정분리’ 선언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정당 위에 군림하고 있다. 전당대회를 코앞에 두고 여당 당의장을 산업자원부 장관 자리에 ‘징발’하고 여론의 반발을 무릅쓰고 어제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기용을 강행한 것이 그 예다. 노 대통령은 최근에는 역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 중이다. 그제 각계 인사 초청 신년인사회에서도 조선시대 대동법이 정착되는 데 100년이 걸린 점을 예시하며 ‘역사강의’를 했다. 연정론(聯政論) 정국 때 최장집교수가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처럼 ‘정당정치를 초월한 역사적 지도자’의 모습이다.

“누가 뭐래도 내 식대로 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고집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정권을 잡았고, 탄핵풍에 힘입어 국회 과반의석을 확보하는 대역전 드라마를 이루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그래서 “정권재창출은 내가 주도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개각 쇼’로 시작된 집권 4년차 정국과 대선판도를 읽는 노 대통령 및 친노(親盧) 직계세력의 독법(讀法)과 여권의 일반적 인식에 괴리가 감지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첫째, 5월 지방선거. 여당 의원 대다수는 “노 대통령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서울 경기 중 하나를 이기려면 내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현재의 여당 틀로는 대선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유 의원의 입각에는 ‘개혁정권 재창출’을 위해 대선 예비후보군을 넓혀 놓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둘째, 경제 상황. 여당 의원들은 경제 상황 악화가 지방선거와 대선에 치명적 악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올해 행정도시 건설이 시작되면 내수경기도 살아난다. 대선 때는 경제가 이슈가 되지 않을 것이다”고 장담했다.

셋째, 호남 대책.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호남표 확보, 특히 민주당과의 합당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여당 의원이 대다수다. 반면 노 대통령의 생각은 “호남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민주당과의 통합론이 제기되자 ‘창당 초심(初心)’을 강조하며 쐐기를 박은 것도 그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노 대통령은 착실히 득점을 쌓아 이기는 평상(平常)의 정치에 관심이 없다. 산술적 연합으로 표를 얻는 아날로그 방식의 정치에서 ‘바람’(정권 측 용어로는 ‘시대정신’)을 잡으면 단기간에 판도가 바뀌는 디지털 정치로 선거의 개념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국민 일반의 체감(體感)과 동떨어진 노 대통령의 ‘나 홀로’ 독법은 ‘대란(大亂)은 대치(大治)로 통한다’는 마오쩌둥(毛澤東)식 논리를 닮았다. 더욱이 임기 말 친위세력을 포진시키는 응축형(凝縮型) 국정운영이 결국 민심과의 거리만 더욱 벌려 국정파탄을 불러 온 전례를 잊고 있는 듯하다.

그나마 경제상황에 대한 ‘장밋빛 예측’이라도 맞았으면 좋겠다. 그마저 빗나간 뒤 다시 한번 바람의 정치가 펼쳐지면 국가적 파탄상황이 오지 않을까. 그것이 더욱 걱정스럽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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