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여론과 외교 ‘不可近不可遠딜레마’

  • 입력 2006년 1월 6일 03시 03분


민주정치 체제에서 외교정책은 여론에 따를 것을 요구받는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당연한 전제다. 하지만 여론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인 외교정책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북한에 대해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할지, 한국과 일본의 여론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의 여론이 북한을 보는 시선은 따뜻하다. 남북통일의 비원(悲願)을 배경으로 남북교류가 진전될 때 여론은 많은 지지를 보내 왔다. 정부 정책보다 여론 쪽의 온도가 높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반대로 일본의 여론이 북한을 보는 시선은 싸늘하다.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따른 군사적 위협, 일본인 납치와 그 뒤 북한이 보여 준 성의 없는 대응은 대북 불신감을 전례 없이 고조시키고 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북한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려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보다 여론 쪽이 더 깊은 불신감을 갖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나라가 여론을 중시하는 정책을 선택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먼저 한국을 보자. 남북교류가 계속 심화된다고는 하지만 북한이 한국에 주는 군사적 위협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사실상 묵인한 채 남북교류를 촉진하는 것은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일 뿐 아니라 미국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 간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일이다.

만약 일본 정부가 여론을 추종해 대북정책을 짠다면 납치 피해자 문제에 대한 북한의 성의 있는 대응을 요구하기 위해 경제제재를 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이 제재에 협력할 가능성이 적다. 경제 거래 규모를 볼 때 일본만의 단독 경제제재가 북한의 양보를 이끌어 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과적으로 북한에 경제제재를 가하는 일본 정부와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한국 중국 정부의 거리는 지금보다 더 멀어지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도 일본도 이 같은 정책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남북 대화를 추진하는 노무현(盧武鉉) 정권도 북한의 핵무장을 승인하지 않았고, 납치 피해자 구제를 중시하는 고이즈미 정권도 경제제재에 나서지는 않았다. 어느 쪽의 정책도 장래 외교정책의 선택 폭을 좁히고 말 것이라는 점에서 결코 합리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히 따른다면 이 같은 합리성을 내세우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 현명하지 않은 외교정책도 여론이 요구한다면 무시할 수는 없다.

더 귀찮은 문제는 여론에 영합하는 외교정책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여론의 지지를 얻는 수단으로 정치 지도자가 외교문제를 이용할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다. 또 정부가 준비하는 외교정책과 여론이 요구하는 외교정책 사이에 거리가 있을 경우 그 거리를 이용해 여론의 입맛에 맞게 지도자의 정책을 비판하는 정치가가 등장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한국을 보자면 노 대통령 스스로가 인기를 끄는 수단으로 외교를 이용한 흔적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내정(內政) 지향인 고이즈미 총리를 봐도 2004년 두 번째 북한 방문이 그 직후에 있었던 참의원 선거와 무관하게 이뤄졌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가 납치 피해자를 도외시하고 북-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한다면 자민당, 더구나 총리 자신이 속한 모리(森)파의 반발을 피할 수 없다. 정책 지향이 반대라고는 하지만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정치가는 여론과 외교의 관계에 민감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여론의 역할을 부정하는 일은 자살 행위다. 그러나 무작정 여론의 요구에 따르는 것은 불합리한 정책을 추진하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떡하면 좋을까. 이 딜레마의 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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