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북측에 의해 억류된 물자를 돌려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측으로부터 사업 종료에 따른 보상을 받아내기 위한 담보로 물자를 잡아두겠다는 게 북한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북한은 지난해 11월 말 KEDO가 경수로 사업을 종료하기로 의견을 모은 직후 “사업이 종결됐으니 경수로 관리 인력은 더는 필요 없다”며 인력 철수를 요구했다.
▽최소 비용이 17억 달러=KEDO와 북한이 체결한 ‘경수로 공급협정’에 따르면 경수로가 완공되면 북한은 KEDO 측에 공사비용을 무이자로 3년 거치, 20년간 갚게 돼 있다. 그러나 공사가 중간에 종료돼 북측에서 비용을 받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경수로 공사 및 관리비용 15억6200만 달러 중 분담금 11억3700만 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2조7127억 원의 국채를 발행했고 이 중 8147억 원을 갚았다.
또 KEDO는 사업 주계약자인 한전 및 국내외 66개 협력업체와 체결한 114건의 계약에 대한 위약금, 금호지구에서 장비를 가져오지 못한 업체들에 대한 손해배상금 등 사업 청산에 필요한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지난해 9월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국정감사에서 청산비용을 2억 달러로 밝혔다. 그러나 KEDO 사무국은 청산에 3억∼5억 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사업 청산 때까지 KEDO 집행이사국들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17억 달러(약 1조7000억 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한국도 청산비용 분담액까지 감안하면 최소 12억 달러(약 1조2000억 원)를 손해 보게 됐다.
KEDO 집행이사국들 간의 비용 분담 문제와 관련해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지난해 12월 “미국이 한국의 청산비용 부담 요구에 응하지 않아 사업 종료 결정이 늦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2004년부터 KEDO 사무국 운영비도 내지 않고 있다.
▽신포 경수로 재활용 가능성=지난해 9월 2단계 제4차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은 북한의 핵 폐기 이행 및 ‘적당한 시점’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키로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핵 폐기 범위엔 신포 경수로도 포함된다.
즉 북한이 영변 원자로와 신포 경수로 등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의 폐기를 이행해 신뢰를 쌓으면 다른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게 6자회담 참가국들의 방침이다. 또 남한은 북한에 새로운 경수로가 만들어질 때까지 부족한 전력을 충당해 주기 위해 200만 kW 송전 제안까지 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북한이 핵 폐기를 실천하면 신포 경수로를 살려내는 문제가 논의될 수도 있다. 어차피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해야 한다면 이미 시설 공정의 21.6%가 진행된 신포 경수로의 공사를 재개하는 게 비용 절감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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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류된 물자 절대로 포기 못해”▼
11년째 북한 신포 경수로의 건설 및 관리를 지휘해 온 장선섭(張瑄燮·71)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장은 7일 한국 선박 ‘한겨레’호를 타고 함경남도 신포군 금호지구에 가서 8일 철수 인력 57명과 함께 강원 속초항으로 돌아왔다.
장 단장은 속초에 도착한 직후 본보와의 통화에서 “북측의 협조로 철수가 쉽게 이뤄졌다”며 “배가 떠날 때 북측 관계자들이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측이 중장비와 차량, 생활비품 등 모든 물자를 억류한 데 대해 “물자는 모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자산으로 절대 포기할 수 없다. KEDO가 북측과 반환 협상을 벌여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KEDO 집행이사국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경수로 공사 및 청산비용 분담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다만 “지금까지 투입된 돈이 낭비되지 않고 추가로 들어갈 돈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단장은 최근 KEDO의 청산비용 분담 논의가 마무리된 뒤 물러나겠다는 뜻을 표시한 바 있다. 그는 “금호지구 인력의 안전한 철수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는데 일단 안전하게 철수해 걱정을 덜었다”며 “사업이 잘돼 가는 상황에서 그만두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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