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조사에서 한국 정치가 ‘의회와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 정치’여야 한다는 데 응답자의 77% 이상이 동의했다. 그러나 약 23%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비록 23%이지만 우리의 민주 통치가 의회와 정당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데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특히 이런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20, 30대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 많다. 젊은 지식층에서 의회와 정당에 대한 불신이 높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는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응답자의 47.6%가 ‘의회와 선거에 개의치 않는 지도자가 나라를 이끄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의회나 선거 결과와는 관계가 없는 통치, 즉 비록 비민주적일지라도 소신 있는 지도자, 독선적일지라도 강력한 지도자를 희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회와 선거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권위주의 정치라도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한국 경제와 사회 발전 과정에서 보여 준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향수, ‘박정희 신드롬’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는 게 중요하다’(10점 만점에 8.47점)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민주적으로 통치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6.38점).
그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도 30%나 됐다. 한국 사회에 절차적인 민주화가 이룩됐으나 사람이 아닌 법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 의회와 정당이 정치의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사회가 되기까지는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어수영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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