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치기(稚氣) 어린 자기도취에서 깨어나는 데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곧 깨달았으니까. “북한을 알면 알수록 보수적이 된다”는 말은 옳았다.
지난해 12월 9일 중국 선양(瀋陽)의 칠보산호텔에선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준비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회의가 열렸다. 6·15남북공동선언 5주년이던 작년 한 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민족끼리’ 통일의 기반을 다졌으니 이를 더 크게 살려 나가자는 회의였다. 어떻게 살릴 것인가. 임시 기구이던 행사준비위원회를 상설 기구로 바꾸고 규약도 만들자고 해서 탄생한 게 ‘6·15공동선언실천민족공동위원회’(6·15민족공동위)다. 회의에는 공동위원장인 백낙청(남), 안경호(북), 곽동의·문동환(해외)을 포함해 이른바 통일운동가 80여 명이 참석했다.
6·15민족공동위 출범은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올해도 통일운동, 정확히 말하면 북의 통일전선운동이 맹위를 떨칠 것임을 예고한다. 이달 1일자 북의 신년 공동사설을 보자. 한 해 대남(對南)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 사설은 작년을 “조국통일운동에 커다란 자국을 남긴 해였다”고 평가하고 “올해는 남과 북, 해외동포 등 온 겨레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조국통일 위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통일운동의 굿판을 더 치열하게 벌이라는 것인데 6·15민족공동위가 바로 이를 위한 실행 기구다.
둘째, 이 기구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의 일란성 쌍둥이다. 북의 대남 통일운동 기구는 통일혁명당을 뿌리로 1980년대 한국민족민주전선, 90년대 범민련으로 이어지는데 범민련의 활동이 갈수록 위축되자 들고 나온 것이 6·15다. 북으로서는 동력(動力)이 떨어진 대남 활동을 살리기에 이보다 더 좋은 ‘엔진’이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6·15민족공동위의 뿌리는 범민련이다. 범민련에다 옷만 바꿔 입혔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공동위 북측 위원장인 안경호(일명 안병수)는 범민련 북측 부의장이다. 해외 대표인 곽동의(전 한통련 의장)는 ‘범민련’이라는 이름을 지은 사람이다.
1990년 11월 발족된 범민련은 어떤 단체인가. 긴 말이 필요 없다.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연방제 통일을 목표로 활동하는 친북통일전선 단체다. 남측 관계자들 일부가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적(利敵) 단체다.
선양 회의에 참석한 남측 인사들도 이 정도는 알고 갔을 것이다. 그들 모두 평생 통일운동만 한 사람이 아닌가. 뿌리를 따지기에는 통일을 향한 그들의 열정과 갈망이 너무나 컸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다. 우리는 왜 이처럼 중요한 회의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 회의는 이틀이나 열렸지만 주요 언론은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진보성향의 인터넷매체 한두 군데서 간단히 언급했을 뿐이다.
구차하게 공동위의 성격을 놓고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회의 참석자들의 책임을 물으라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좌파의 통일운동을 보는 우리 사회의 눈도 한결 관대해졌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식은 곤란하다. 포용정책도 좋고 통일운동도 좋지만 상대가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는 있어야 한다. 그것이 분단국가 국민의 피할 수 없는 처지다. 국가정보원과 통일부도 알고 있었을 테지만 브리핑 한번 하지 않았다.
세상 모든 일에는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저쪽이 너무 나가면 이쪽에서 걱정하고 충고할 때 비로소 균형이 잡힌다. 그래야 어떤 통일운동도 독선과 오만에 빠지지 않는다. 올여름, 서울과 평양을 뒤덮을 ‘민족끼리’라는 구호가 벌써 지겹게 느껴진다. 그런다고 정말 통일이 된다고 믿는 것일까. 치기를 버리고 제발 어른이 됐으면 한다.
이재호 수석 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