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광둥 경제벨트 시찰…‘제2개혁’ 밑그림 그리는 듯”

  • 입력 2006년 1월 14일 03시 02분


중국을 극비 방문 중인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13일 남부 광둥(廣東) 성의 경제벨트를 시찰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지역은 1980년대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 개방 구상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곳이어서 북한의 향후 경제정책 변화가 주목된다.

▽김정일식 ‘남순(南巡) 행보’=김 위원장은 13일 광저우(廣州)에서 장더장(張德江) 서기 등 광둥 성 지도자들을 면담하고 경제개발구를 시찰한 뒤 14일 경제특구인 선전(深(수,천))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가 보도했다.

이날 베이징(北京) 소식통들도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보면 김 위원장이 13일 광저우 시의 주장(珠江) 강변에 있는 5성급인 바이톈어(白天鵝)호텔에 투숙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NTV는 이날 오전 9시경 김 위원장의 호텔 도착 모습을 카메라로 포착했다고 밝혔다. 이 TV 관계자는 “다소 먼 거리에서 촬영해 정확한 모습이 확인될지는 모르겠지만 호텔 직원 여러 명이 그를 봤다고 확인했다”고 말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도 “김 위원장이 50대가량의 승용차를 타고 온 일행 가운데 포함돼 있는 것을 보았다”는 호텔 직원의 말을 전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광저우와 선전을 시찰하고 내주 초 베이징으로 이동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를 만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한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10일 오후 베이징 외곽에 도착해 간단한 일정을 소화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후 주석과 먼저 면담한 뒤 남부 경제지역 시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제2의 천지개벽’ 개혁 예고?=당초 김 위원장이 후 주석의 방북 2개월여 만에 전격적으로 중국을 찾은 것은 양국 간 경제협력 확대와 위조달러 제조 의혹을 제기한 미국의 ‘북한 옥죄기’에 대한 돌파구 마련이 주 목적인 것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그가 전례 없이 중국 남부로의 긴 여정에 나선 것은 구체적인 현안 논의보다 ‘좀 더 큰 개혁의 그림’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보인다.

특히 광둥 성의 선전, 주하이(珠海), 산터우(汕頭) 등 3개 도시는 1980년 8월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돼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구상이 실현된 곳이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이 귀국한 후 북한에 획기적인 경제개혁 조치가 뒤따를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실제 김 위원장은 2001년 1월 상하이(上海) 푸둥(浦東)을 방문한 뒤 이듬해 7월 배급제 폐지와 기업 인센티브제 도입 등 시장경제 요소를 가미한 ‘7·1경제관리 개선조치’를 내놓았다.

이런 맥락에서 김 위원장의 광둥 성 방문은 중국의 경제발전 경험에 대한 단순한 학습 단계를 뛰어넘어 중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끌어내 제2의 개혁 청사진을 내놓기 위한 준비 작업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김 위원장의 방중은 북한의 개혁 개방 의지를 대외적으로 과시함으로써 미국의 금융 제재 등 압박 수위를 낮추는 부차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베이징의 관측통들은 “김 위원장이 귀국 이후 전면 개혁 개방은 아닐지라도 중국식 경제특구 모델을 다양하게 실험할 가능성이 높다”며 “경제특구 설치는 미국의 경제 제재로 막혀버린 외환 유입의 유일한 창구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베이징=황유성 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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