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이거… 해도 너무했네”

  • 입력 2006년 1월 19일 03시 22분


《기간(基幹)당원 모집책이 술자리에서 60대 노인에게 “막걸리나 한잔하시죠”라며 1만 원을 건넨 뒤 노인한테서 은행 계좌번호 등이 담긴 입당원서를 받아 한 달에 2000원씩 당비를 인출해 갔다면 당비(黨費) 대납일까, 예금 무단 인출일까. 또 기간당원 모집책을 맡은 노인회 회장이 “당원이 되면 당의장 등을 선출할 수 있는 투표권이 생긴다”며 “통장을 가져오라”고 한 뒤 입당원서를 대신 쓰고 은행 계좌번호도 대신 적었다면…. 》

○“노인갈취당 소리 듣게 되면 끝장이다”

열린우리당이 ‘유령당원’ 논란을 촉발시킨 서울 관악구 봉천본동 노인 157명의 기간당원 가입 및 예금 인출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놓고 속병을 앓고 있다. 이 같은 사례들이 실제로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막걸리 값 명목으로 당비를 대신 내준 뒤 입당원서를 받았다면 당비 대납이 된다. 하지만 술자리를 이용해 당사자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당원서를 받고 은행에서 돈을 인출했다면 사기나 절도에 해당된다.

은행 계좌번호를 적고 당원으로 가입하면 당비가 자동 인출된다는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입당원서를 대신 써 주고 계좌번호를 기재했다면 이 역시 사기로밖에 볼 수 없다.

자신의 은행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간 ‘피해자’ 노인 중 일부는 “당비를 빼내 간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열린우리당은 사기나 절도보다는 차라리 구태정치의 상징인 당비 대납을 시인하는 것으로 이번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대부분의 당 관계자가 이번 사건의 진상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가운데 몇몇 당직자는 “당비를 대납해 줬지 무단으로 빼간 것은 아니다”, “설혹 무단 인출 사례가 있다고 해도 이는 일부 모집책의 잘못이지 당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 당직자는 “불법 대선자금 사건 이후 한나라당이 ‘차떼기당’이란 오명을 씻지 못하듯 열린우리당이 행여 ‘노인갈취당’이란 비판을 듣는다면 지방선거고 대선이고 다 끝”이라고 우려했다.

○정도 차이일 뿐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

인천 연수구에 사는 이모 씨는 최근 은행에 갔다가 자신도 모르게 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이 된 사실을 알게 됐다고 본보에 제보해 왔다.

지난해 8월 “통장을 좀 달라”는 누나의 말에 통장을 건넸던 그는 “한 달 뒤인 9월 통장에 1만2000원이 입금된 뒤 매달 2000원씩 자동 인출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경우는 “대단히 순진무구한 사례”라고 한다. 통상적으로 당비 대납의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선불금을 현금으로 준다는 것.

또 6개월 당비 납부를 약정할 경우 그 기간의 당비에 해당하는 1만2000원 외에 별도의 사례비를 얹어서 선불금을 주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당비는 통장에서 자동이체해 가기도 하지만 휴대전화 결제 방식으로 받는 경우도 많다.

경기지역에선 한 60대 노인이 지난해 4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려는 친지의 요청으로 6개월 치 당비를 선납받고 휴대전화 당비 결제에 응했으나 1년이 넘도록 계속 당비가 빠져나간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당에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당비 자동결제를 중단하려면 휴대전화나 은행통장 명의자가 스스로 해지해야 한다”며 “이를 모르거나 약정 기한을 잊고 있다가 계속 당비가 인출되는 것을 발견하고 당에 항의하는 사례가 없지 않다”고 말했다.

○마구잡이 당원 모집 왜?

이런 식의 마구잡이 당원 모집이 성행하는 것은 지방선거 출마 희망자와 지방선거 후보경선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유령당원 논란의 발단이 된 관악구 봉천본동은 국회의원 선거구로는 관악갑에 포함된다. 그러나 본보가 이 지역의 일부 기간당원 명단을 입수해 전화조사를 해 본 결과 “옆 지역구 의원 측에서 도와 달라고 해 가입했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국회의원 선거구가 갑과 을로 분리돼 있는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의원들이 단체장후보 경선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 지역구 외에 이웃 지역구에서까지 당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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