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문제 해결을 막아 온 최대 방해자는 A급 전범들을 합사하고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보란 듯이 강행해 오고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임에 틀림없다. 그런 완고한 역사 인식을 가진 총리가 국민의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한편 한국 측은 그간 어떠했나. 2004년 7월 제주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내 임기 동안에는 한국 정부가 한일 간 과거사 문제를 공식적인 의제나 쟁점으로 제기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작년 3월 일본 정부에 과거사 진상 규명과 사과, 배상 등을 요구했다. 이런 모습은 설득력이 부족하고 무기력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한국 정부의 태도에 대해 일본 외상은 “한국 정부의 의중은 알 수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때 한국 정부는 외교 채널을 가동해 일본 정부의 그러한 반응에 정면으로 대응했어야 했다.
작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중 양국 정상이 만났을 때도 노 대통령은 당시 한창 문제가 됐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교과서 왜곡, 독도 문제를 더욱 부각시키려는 의도였겠지만 “더는 사과나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개인의 개별 청구권은 남아 있다”고 사족을 붙였으나 과연 적절한 발언이었을까? 일본 외무성은 재빨리 공식 성명으로 이 같은 내용을 홈페이지에 발표했고 신문 TV도 신속히 보도해 버렸다. 한국 정부로서는 그때도 분명한 뜻을 다시 밝혔어야 했다. 특정한 목적만을 겨냥해 다른 것들을 소홀히 할 것이 아니라 총체적 전략적, 그리고 병합적인 교섭이 현명한 대응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 인식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인권 문제는 결코 과거사로 끝날 수 없다.
작년에는 17명의 일본군 위안부가 한 맺힌 생애를 마쳤고 전시에 오른팔을 잃고 60년 동안 일본 정부를 상대로 외롭게 최고재판소까지 가며 싸워 왔던 부산의 김성수 씨도 세상을 떠났다. 남방전선에서 포로감시원으로 동원되었다가 B급 C급 전범의 오명을 덮어쓴 사람들도 있다.
종전 후 일본인들과 함께 강제노동을 하며 소련에 억류되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삭풍회 회원)도 있다. 이들은 전쟁이 끝난 지 일주일여 만인 1945년 8월 23일부터 소련 땅으로 압송돼 겨울철이면 영하 55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땅에서 기아와 강제노동, 혹한 등 삼중고를 겪은 사람이다. 요행히 다시 조국 땅을 밟은 한국 사람은 500여 명이었지만 이들도 지금은 30여 명만이 남았다.
삭풍회는 종전 후의 사건으로 청구권 협정 대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한국 정부는 어찌해서 계속 침묵하고 있는가! 위안부와 사할린 징용자들, 피폭자들도 청구권 협정 대상이 아님에도 정상적인 조치는 강구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전후 문제와 관련해 상대방이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한 스스로의 양심적인 조치는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답은 늘 한결같다. “끝났다”다. 한국 정부의 자세가 더욱 분명하고 결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리미쓰 겐(有光健) 일본 전후보상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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