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에 따르면 그는 통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정치권, 검찰과 경찰, 법원, 군(軍)은 물론이고 청와대에도 인맥을 구축해 배경으로 삼았다. 지난해 11월 구속되기 직전까지 청와대 고위 인사와 수시로 통화를 한 사실도 드러났다. 비슷한 시기에 이해찬 국무총리와 골프를 쳤다는 진술도 있었다. 총리실 측은 이 총리가 국회의원 시절에는 골프도 함께 치고 후원금도 받았으나 총리가 된 뒤에는 만난 적이 없다고 했지만 군색한 변명이다.
윤 씨의 돈거래도 수수께끼다. 사건 해결과 인사(人事)에 대해 청탁을 하면서 그가 돈을 건넸을 법한데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그게 아니다. 되레 현직 판사와 고검장 출신 변호사, 여당 의원, 경찰 간부 등이 그에게 수천만 원씩 보냈다. 변호사들이 윤 씨 계좌로 입금한 뭉칫돈은 ‘거액 사건’을 만들어 준 데 대한 보답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관련자들의 해명은 미심쩍다. 추한 ‘이면(裏面)거래’가 있었음에도 이를 덮기 위해 ‘단순한 채권 채무 관계’라고 둘러대는지도 모를 일이다. 경찰청 차장 수행비서의 자살도 얽히고설킨 윤 씨 사건의 한 단면이다.
윤 씨는 2003년부터 3년간 강원랜드에서 90억 원이 넘는 수표를 칩으로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대기업의 공사 수주(受注)와 인허가, 각종 인사 청탁 등의 대가로 거액을 챙겨 카지노에서 세탁한 것이다. 바로 이 돈의 용처(用處)가 수사의 핵심이다. 그러나 검찰은 정관계 깊숙한 곳에 윤 씨 비호세력이 있었다는 정황만 흘리고 있다. 그들의 역할에 대해선 수사가 더딘 건지, 말 못할 이유로 수사 자체를 주저하고 있는 건지 분간이 잘 안 된다.
이른바 ‘윤상림 리스트’는 법과 제도, 시스템보다도 안면(顔面)과 먹이사슬이 우선 작용하는 권력세계의 ‘생태지도’다. 정상적인 절차로는 어렵거나 아예 안 될 일도 권력에 줄을 대면 뚝딱 해결되는 마법(魔法)은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끼리 뭘 따져? 좋은 게 좋은 거지’로 통한 윤 씨의 ‘형님, 아우’가 수백 명이었다지 않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이던 2002년 12월 당시 민주당 당직자 연수회에서 당부했다. “(누군가 청탁을 하면) ‘당신 그러다 걸리면 밑져야 본전이 아니고 반드시 손해 볼 것이다. 걸리면 패가망신(敗家亡身)이다’ 이렇게 경고해 주십시오. 나 혼자로는 안 됩니다”라고. 하지만 말이 좋아 브로커지 실상은 사기꾼인 윤 씨에게 사람과 돈이 몰린 걸 보면 이 정부에서도 즉효약은 역시 권력에 줄대기였던 모양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노무현 정권의 편중, 보상(報償), 낙하산 인사를 둘러싼 논란이 정부 고위직은 물론이고 산하 기관이나 공기업에까지 끊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브로커 윤 씨에게는 ‘측근, 동지, 내 고향을 챙기는 정권’ 그 자체가 ‘사업’의 든든한 기반이었을 것이다.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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