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잘난 정부, 못난 리더

  • 입력 2006년 1월 27일 03시 14분


감세(減稅)와 작은 정부를 내건 야당 보수당이 10여년 만에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 집권당의 뇌물 스캔들과 정책의 우선순위도 못 가리는 무능에 국민은 질린 상태였다. 강경 이미지를 못 벗던 야당 대표도 “중도로 진화(進化)했다”고 해서 국민의 마음을 샀다.

23일 총선을 치른 캐나다 얘기다. 세금은 주요 이슈였다. 보수당은 과거 증세(增稅) 때문에 민심을 잃어 실각했고 이번에 감세 공약으로 민심을 얻었다. 스티븐 하퍼 당수는 당시 브라이언 멀로니 보수당 총리의 세금정책에 실망해 당을 박차고 나갔다가 금의환향했다.

지난해 10월 노무현 대통령은 그 멀로니를 애국적이고 소신 있는 지도자라며 감탄했었다.

“멀로니 총리는 재정파탄을 면하기 위해 1991년 모든 업종에 부가가치세를 확대했다. 1993년 선거에서 보수당은 2석만 남고 전멸했다. 결과적으로 당을 몰락시키고 캐나다 재정을 구했다. 국민은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나.”

노 대통령의 그 발언이 요즘 증세 논란 때문에 다시 주목받는다. 멀로니에 대한 노 대통령의 평가가 정확했거나 우리 현실에 맞아서가 아니다.

멀로니가 세금을 올린 건 사실이지만 그 덕에 캐나다 재정이 살아났다고 할 수는 없다. 마이클 윌슨 당시 재무장관도 “부분적으론 증세, 또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그리고 탈(脫)규제와 민영화 등 경제자유화로 재정이 개선됐다”고 했다고 최근 캐나다 신문 ‘토론토선’이 전했다.

더구나 멀로니는 전임 자유당의 ‘큰 정부’로부터 국내총생산(GDP)의 50%쯤 되는 부채를 물려받아 증세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정부 5년간 늘어난 나랏빚이 53조 원인데, 집권 3년 만에 82조 원의 빚을 더 지고도 돈이 더 필요하다는 노 대통령과 비교되면 멀로니는 억울할 판이다.

노 정권은 오히려 멀로니에게 부담을 떠넘긴 피에르 트뤼도 정권과 흡사하다. 경제 호황기였던 1968년 집권한 트뤼도는 16년간 7개 부처와 14개 장관직, 114개 위원회를 늘려 정부지출과 재정적자를 2배씩 키웠다. 정부가 시장 실패를 고친다며 간섭하고 분배정책을 강화해 경제를 되레 망쳤다. 부가세는 그래서 도입됐지만 실업과 재정적자가 폭증했다. 멀로니의 인기는 지금도 바닥이다.

이런 사정까지 노 대통령이 알았다면 당당하게 ‘큰 정부’를 추구하지도, 재원(財源) 마련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을 주장하지도 못했을 거다. 그제 대통령 기자회견과 ‘국정브리핑’에 따르면 참여정부는 이미 씀씀이를 최대한 줄인 나무랄 데 없는 정부다. 정부 성향과 상황으로 보아 외국인 직접투자나 공기업 민영화로 세수를 늘릴 것 같지도 않다. 증세를 안 한다면 방법은 조세개혁밖에 없다. 멀로니도 증세라는 말 대신 ‘세입 균형’을 이루겠다고 했다.

정부가 한정된 자원에 따라 정책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고, 유능하게 그 일을 해낸다면 세금 못 내겠다고 할 국민은 없다. 특히나 노 대통령은 “언제든지 대통령이 모든 답을 먼저 내놓고 가는 것만이 책임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할 만큼 탈권위적이고, 북한 위폐 문제와 관련해서는 “실무자에게 맡기겠다”고 할 만큼 민주적 지도자 아닌가.

리더십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할 일 안할 일 못 가리고, 불확실성을 키우는 지도자를 미국 룬드대 메츠 알베슨 교수는 ‘못난(ugly) 리더십’이라고 했다. 좌파냐 우파냐가 중요한 건 아니다. 참여정부 코드에 맞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씨도 “정부는 공장 짓고 일자리 만드는 역할을 하기보다 과학과 테크놀로지,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지난달 포린어페어스지(誌)에 썼다.

스스로 잘하고 있다는 우리 정부도 멀리 역사만 볼 게 아니다. 지금 다른 나라는 어떤 정책으로 성공하는지부터 볼 필요가 있다. 다음 선거에선 유권자도 어떤 리더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못난 국민’인지 아닌지 가려질 것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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