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발전을 이끈 교육 부문이 역동성을 잃고 있습니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학력의 대물림 현상을 막아야 합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비정규직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지난달 26일 오후 고려대 국제어학원(원장 김기호·金基浩) 강의실. ‘양극화 해소’를 강조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신년연설에 대해 11명이 진지하게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3개 조로 나눠 양극화 문제 해법을 발표했으며 다른 조의 발표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 냈다.
토론 내용만 보면 이들은 한국의 대학원생으로 착각할 만하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 정부가 파견한 미래의 ‘한국 전문가’가 될 미국인 학생이다.
발음이 다소 어눌했을 뿐 한국 대학생 수준의 한국어 어휘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철저한 ‘한국 전문가’ 키우기=이들은 미 국방부가 주관하는 ‘주요 외국어 인재 양성 계획(NFLI)’에 따라 고려대에서 위탁 교육을 받고 있는 2기생. 이 프로그램은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한국어 중국어 아랍어 러시아어 페르시아어 등 5개 언어에 능통한 지역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시행됐다.
고려대 국제어학원 한국어문화센터는 미 국방부의 의뢰로 2004년 하반기부터 한국 전문가를 비공개로 양성해 왔다. 1기생 7명은 지난해 6월 1년간의 교육을 마쳤다.
이들의 교육 과정은 매우 엄격하다. 미국은 수십 대 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선발한 미국 학부 졸업생 30∼40명을 1년 동안 미 하와이대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교육한다.
이들 가운데 한국어 능력과 이질적 문화에 대한 적응력 평가를 통과한 사람만이 1년 동안 한국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이들은 고려대 학부 및 대학원에서 2, 3개 과목을 수강하고 미디어 수업, 국가인권위원회 통일연구원 등에서의 인턴 과정 이수, 사물놀이 산업시찰 등을 통한 문화 적응 교육도 받는다.
고려대는 이들을 위한 전담 교수 2명을 두고 학생 1인당 4, 5명의 학습 도우미를 배치했다. 도우미들은 ‘협력자’이자 매달 교육 성과를 보고하는 ‘평가자’이기도 하다. 미국은 2년간 학생 1인당 20만∼30만 달러의 교육비를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수료자 일부 美6자회담 팀 활약
▽“20년 뒤 주한 미국대사는 바로 나”=이들은 과정을 마친 뒤 미 연방정부의 각 부처에서 2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한다.
1기생 7명 가운데 1명은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이끄는 ‘6자회담’ 협상팀에서 활약하고 있고 다른 1명은 부처 발령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학업을 계속하고 있는 나머지 5명도 학위를 마치는 대로 미 정부 부처에서 근무할 예정이다. 미 정부는 이들이 의무 근무 기간을 마친 뒤에도 계속 정부 부처에 남기를 희망하고 있다.
올해 6월 수료할 2기생 11명의 포부는 주한 미국대사, 북한 인권 전문가, 한미 통상 전문가 등으로 다양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배우지 않았다면 한국에 대한 오해가 많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A(24·여) 씨는 “영어 번역문을 보고는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을 한국 문화를 체험하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B(25) 씨는 “언론을 통해 반미 시위,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논란 등을 접했을 때 한국의 반미 감정이 심각하다고 느꼈지만 직접 한국인들을 만나면서 이 같은 오해를 풀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 재미 교포 출신 학생은 미국에서 국가 기밀 누설 혐의로 실형을 살았던 로버트 김(김채곤·66) 씨의 사례를 떠올리며 부담스러워 하기도 했다. 재미 교포 C(27) 씨는 “‘미 정부를 위해 일하되 양심적으로 판단하라’는 부모의 조언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고 털어놨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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