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정은]선거용 장관 양성 해도 너무한다

  • 입력 2006년 2월 23일 03시 06분


“청와대가 무슨 장관 훈련소냐.”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원내대표가 22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 말이다. 여당이 일부 현직 장관을 5월 지방선거에 후보로 내세우기 위해 차출을 요청하고, 이를 위해 청와대가 조만간 개각을 계획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다.

같은 당 이계진(李季振) 대변인은 이를 두고 “국무회의가 여당 선거용 인큐베이터가 돼 버렸고 장관은 그 안에서 몸무게를 불리는 미숙아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지방선거 출마설이 나도는 장관들을 향해 “장관 명예를 얻었으니 이제 선거에서 은혜를 갚으라는 요구를 받는 것 아니냐”면서 “떠밀려 나가는 국무위원들의 모습이 낙화암으로 내몰리는 삼천궁녀처럼 처량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현재 경기지사와 경북지사, 대구시장 등 주요 광역단체장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장관은 10명에 이른다.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신임 의장이 당선 직후인 19일 대구 방문에 대구시장과 경북지사 후보로 거론되는 장관 2명을 대동해 ‘지방정부 심판론’을 외치면서 장관 차출 논란이 증폭됐다.

열린우리당 측은 이런 비판에 대해 “현재 헌법에 내각제적 요소가 있는 만큼 내각 경험을 쌓은 뒤 지방의 삶의 질을 위해 일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수시로 바뀌는 수장(首長)을 모셔야 하는 공직사회의 반응은 싸늘하다. 환경부의 한 공무원은 “환경 분야가 얼마나 많은 공부가 필요한 전문분야인지 아느냐”며 “정치인들이 1, 2년 왔다가 직함만 걸고 사라지면 중장기 업무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말했다.

국정 각 부문의 최고 책임자인 장관이 예산은 적절하게 쓰이고 있는지, 정책은 정확하게 추진되고 있는지, 부하 공무원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하루 24시간을 꼬박 일해도 충분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징발 예상 장관들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이미 때가 늦은 것 같다. 정치권 분위기에 신경 쓰고, 여론조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일이 제대로 되겠는가. 선거에 이기기 위해 조직적으로 장관 자리를 이용하는 것은 야당에 앞서 국민에게 비난받을 일이다.

이정은 정치부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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