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임기 5년 길다”]5·31 앞두고 ‘개헌카드’ 꺼내나

  • 입력 2006년 2월 27일 03시 00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집권 4년차를 시작하는 26일 ‘대통령의 임기 조정’과 ‘대통령 임기 도중 선거가 잦은 데 따른 폐해’를 화두로 꺼냈다.

정치권은 즉각 노 대통령의 발언을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개헌하자는 것으로 풀이하면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헌 정국을 유도하려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노 대통령 ‘임기’ 발언은 준비된 메시지?=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북악산 등산을 하다가 잠시 쉬는 동안 “제도적으로 (대통령) 임기가 좀 길고 중간에 선거가 끼어들어 자꾸 국정이 흔들린다”고 말했다.

하산 길에 한 참모가 ‘개헌을 하자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고, 노 대통령은 등산에 이은 오찬 간담회에서 “개헌을 전제로 한 얘기가 아니다”고 해명했다.

오후 6시경에는 이병완(李炳浣) 대통령비서실장이 청와대 춘추관(기자실)을 찾아와 “임기 3년을 지낸 개인적 소회를 얘기한 것일 뿐”이라며 불끄기에 나섰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개헌과 연결시켜 기사가 나가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엄포까지 놨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우발적인 게 아니라는 정황도 있다. 나흘 전인 22일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가 국회 답변을 통해 4년 중임제 개헌의 필요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자 여권 내에서는 노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계기로 개헌 얘기를 꺼낼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총리에 이어 대통령이 비슷한 얘기를 한 것은 내부 조율이 있었다는 것 아니겠느냐”며 “대통령이 앞에 나서기 어려우니 당 쪽에서 알아서 추진해 보라는 메시지로 들렸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달 중순 사석에서 “전면적 개헌은 어렵겠지만 대통령과 국회의 임기 조정만큼은 해야 한다는 게 노 대통령의 확고한 생각”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대통령 임기’ 문제는 개헌과 직결=청와대 참모진은 아무리 비공식 행사라도 사전에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지를 준비한다. 따라서 이날 발언을 ‘그냥 한번 해 본 얘기’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최소한 다변(多辯)인 노 대통령이 심중에 있던 구상의 일단을 내비쳤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또한 청와대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임기나 선거 주기를 거론한 것은 그 자체가 개헌 얘기를 꺼낸 것과 다를 게 없다.

대통령 임기 도중에 전국 단위의 큰 선거를 피하기 위해선 대통령 임기를 국회의원 임기와 같은 4년으로 줄이고 대선과 총선의 주기를 일치시키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헌법 조항(70조)을 고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며, 정치권과 학계에서 내놓고 있는 4년 중임제 개헌론과 맥을 같이한다.

문제는 여야 간에 지방선거를 향한 본격적인 샅바싸움이 시작되고 있는 지금 왜 노 대통령이 개헌을 연상시키는 민감한 발언을 했느냐는 점이다.

정치권에서는 무엇보다 여권 내에 ‘지방선거 필패론’이 널리 퍼져 있는 상황에서 개헌이라는 폭발성이 강한 이슈를 제기함으로써 선거 국면을 주도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개헌 논의는 일단 물꼬가 트이면 사안의 성격상 임기 조정 논의에만 그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권력구조의 형태에서부터 영토조항이나 경제조항에 이르기까지 민감한 부분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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