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리는 못내 억울할지도 모릅니다. 노 대통령이 자신과 천생연분이라고 할 만큼 이 총리는 전폭적인 신임을 받으며 국정의 상당부분을 도맡아 온 실세 총리였습니다. 총리실에서는 “철도파업이 벌어진 3·1절에 골프를 쳤다는 사실만으로는 총리 사퇴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고 했습니다.
설사 같이 골프를 친 사람들이 불법으로 정치자금을 줬거나 주가 조작을 한 사실이 있다고 해도, 총리가 직접 관여한 일이 아닌데 무슨 문제냐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이 총리는 자신이 뇌물을 받은 것도 아니고, 굳이 잘못을 찾는다면 거짓말을 좀 한 것뿐인데 쫓겨날 수는 없다고 믿었던 모양입니다.
여기 참여정부의 치명적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가 ‘참여정부는 언제나 옳다’는 아집입니다. 참여정부가 스스로 잘했다고 자랑해온 것중 하나가 정경유착 근절이었습니다. 그러나 현 집권세력이, 불법으로 정치자금을 뿌리고 실세총리와 가까운 사이라는 점을 내세워 사리사욕을 챙겨온 기업인들과 논다는 것 자체가 신(新) 정경유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나는 뇌물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 없다’ ‘나는 로비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무능과 도덕적 불감증이야말로 참여정부의 두 번째 문제로 꼽을 수 있습니다.
신 정경유착에 성공한 기업들은 집권세력에 뇌물을 주지 않고도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는 방법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신 정경유착에 관련된 집권세력은 법적 처벌을 면할지 모르지만, 뒷감당은 국민이 해야 할 판입니다. 이 총리와 같이 골프 친 기업들의 주가 조작 때문에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바로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이번 ‘골프 게이트’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참여정부가 자신들은 새로 기득권세력이 되어 수많은 특권을 누리면서, 국민에게는 그러면 안 된다고 강요하는 이중적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땅을 사면 주말농장이지만 남이 사면 땅 투기다’, ‘내 자식은 미국유학 보내지만, 남의 자식은 평준화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외치는 위선을 이제 국민은 완전히 알아버렸습니다.
이해찬 총리에게 남은 길은 둘 중 한가지일 뿐 입니다. 당장 사퇴하느냐, 아니면 내일 돌아오는 노 대통령이 경질할 때까지 기다리느냐일 것입니다. 역사는 이 총리를 참여정부의 문제를 가장 상징적이고도 명료하게 드러내준 인물로 기록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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