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위 내부 논의 세 갈래=조영황(趙永晃) 위원장을 제외한 전원위 위원 10명 가운데 8명은 북한 인권 정책에 대해 정부에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가 이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내는 데 한몫을 했다. 위원들은 “국회가 북한 인권에 대해 연구만 하라고 예산을 배정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는 인권위의 올해 북한 인권 연구 사업에 1억4800만 원을 배정했다.
의견 표명에 찬성하는 위원들은 지난해 12월 8일 국회에서 통과된 ‘남북 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삼았다.
이들은 ‘정부는 한반도 분단으로 인한 인도적 문제 해결과 인권 개선을 위하여 노력한다’는 이 법률 9조 1항에 따라 인권위가 정부에 북한 인권 정책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거나 권고할 수 있다고 봤다.
한 위원은 “북한 정부와 국제사회에도 인권위가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면서 “독립기구인 인권위는 보편적 가치로 북한 인권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과거 나치의 유대인 600만 명 학살사건을 다른 나라 문제라고 언급하지 않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의견 표명 자체를 반대한 위원은 “우리 민족이 전쟁 없는 평화의 강을 건너려 하는데 얼음이 얼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깨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
논란 끝에 의견을 표명하기로 결정한 전원위는 구체적 내용을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탈북자의 인권에만 그치지 않고 북한 인권 전반에 대해 포괄적으로 언급할지 관심사다.
▽갈팡질팡…3단계 논의 진척 상황=전원위가 지난해 9월 이후 회의를 열 때마다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발언이 잇따랐다. 처음 3차례 회의에서 위원들이 각자 다른 의견을 내 논의가 거의 진척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12일 북한 인권과 관련한 4번째 회의에서 조 위원장은 논의 단계를 구분지은 뒤 전격적으로 1, 2단계 논의를 마쳤다.
위원들은 특위 가안의 문구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 위원은 “‘(북한 인권 문제가)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인권 자체를 논의해야 하는 인권위의 역할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향후 과제=특위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통일부,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에게 정부의 북한 인권 정책과 기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전문가의 조언을 참조해 최종안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권위가 한국 정부에 대해서만 의견을 표명하기로 한 만큼 공개처형, 탈북 성매매 여성, 기아 아동 등 북한 내부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위원들은 사안이 민감한 만큼 다수결로 의견의 내용을 결정하기보다 만장일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심도 있는 토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인권위의 북한 인권 거론은 도발”이라고 반발하고 야당과 보수단체들은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압박하고 있어 인권위는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인권위가 입장을 ‘권고’ 형식으로 할지, ‘의견 표명’ 형식으로 할지도 관심사. 권고안이 나왔는데 정부가 따르지 않을 경우 이유를 문서로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의견 표명’에는 정부가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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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표명 찬성측 “5·18때처럼 北동포 외부도움 필요해”
입장표명 반대측 “그때 우린 美國등 외부간섭 되레 배격”
국가인권위원회 위원들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느냐를 놓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논란거리가 됐다.
의견 표명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모두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5·18민주화운동을 예로 들었기 때문.
▽의견 표명 지지=회의록에 따르면 한 위원은 “광주민주항쟁이 났을 때 우리는 얼마나 외국의 구원을 기다렸느냐”고 말했다.
북한 동포가 험한 상황에 있을 때 남한의 동포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누가 목소리를 내겠느냐는 설명이다.
그는 “우리가 이 상황에서 침묵한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며 북한 인권에 대한 의견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견 표명 반대=이에 대해 다른 위원이 “우리는 군사독재(시절이)나 광주민주항쟁 때 미국이 간섭해 주기를 바란 적이 없었고 오히려 내정간섭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며 “(사실과) 다른 견해가 나오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또 다른 위원이 “남쪽에서도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관련자의 처형이나 ‘광주학살’ 등 많은 인권 탄압이 있었다. 북한의 공개 학살과 비교할 때 공개냐, 미공개냐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면서 반대했다.
그는 “당시 북한이 이 문제에 대해 비난했을지는 모르지만 (남한의) 국내 상황에 변화를 주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대북정책에 불만=위원들은 북한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미국의 정책에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 위원은 “미국은 오래전부터 북한체제 붕괴 전략을 거론해 왔고 국제사회를 동원해서 인권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며 “인권 문제는 북한에 대한 또 다른 공격”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위원은 “북한 인권 문제는 미국 정부의 위선적 인권 잣대로 볼 문제가 아니며 6·15남북공동선언에 따라 평화권과 민족자주권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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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10월 李총리 “인권위는 北 관여기구 아니다”
위원들 “독립성 훼손” 반발
지난해 10월 25일 국회 외교안보문제 대정부 질문에서 한나라당 김석준(金錫俊) 의원이 이해찬(李海瓚) 당시 국무총리에게 “국가인권위원회의 북한 인권문제 전담과 주변국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한 북한 인권 대사 파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 총리는 “인권위는 대한민국에 효력을 갖는 위원회다. 북한에 대해서 관여하는 기구는 아니다”고 답변했다.
회의록에 따르면 인권위원들은 이 답변에 크게 반발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11월 14일 제23차 전원위원회에서 한 위원이 대정부 질문 속기록을 다른 위원들에게 나눠 주며 “이 총리의 발언은 인권위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을 저해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총리가 위원회 업무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총리의 해명 내지 사과가 있어야 하며 인권위 차원에서 보도자료 형식으로 입장이나 의견을 표명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영황 인권위원장은 “인권위의 독립성을 존중한다면 총리가 그런 유권 해석을 내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당시 조 위원장은 “다음 논의에서 결론을 내겠다”고 말했으나 이후 이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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