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참여정부의 부처, 지방자치단체, 정부산하 투자기관 사이에 빚어지고 있는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며 이례적으로 갈등 및 중복사업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키로 했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두 차례에 걸친 예비조사를 통해 205건의 갈등 및 중복사업을 추려 냈다. 역대 정부 내에서도 갈등이 많았지만 사정기관인 감사원이 나서 갈등 사업을 일괄적으로 추려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참여정부의 조정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내부 권력에 대한 ‘분권주의’ 통치 스타일이 갈등을 만들어 내고 조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부처 간 갈등이 가장 많아=감사원이 추려 낸 205건의 갈등 사업 가운데 국가기관 간 갈등 사업이 71건(35%)으로 가장 많았다. 정부 부처 간 갈등의 대표적 사례는 통신·방송 융합 서비스 상용화 사업.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는 인터넷 TV 등 방송과 통신이 융합된 서비스에 대해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4개 부처가 비슷한 내용의 사업을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 정통부 노동부 행정자치부 교육인적자원부는 정보화 격차 해소 사업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통부는 농어촌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행자부는 농어촌 정보화마을 사업을 제각각 진행 중이다.
갈등과 중복의 원인으로는 기관이나 지역이기주의가 108건(53%)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비용 분담 37건(18%), 협조 협의 미흡 30건(15%) 순이었다.
감사원이 꼽는 대표적인 이기적인 갈등 사례는 서울 서대문구와 경기 고양시 간 음식물류 쓰레기처리장 증설 사업. 이들 지자체는 이른바 혐오시설이 자기 지역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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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경기 화성시에 소재한 한 공원묘지 사용권을 둘러싸고 화성시와 서울 동작구 등 7개 구가 갈등을 빚고 있다.
동작구 등은 공원묘지의 일부를 사들여 구민에게 할당했는데 화성시는 이 과정에서 협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공원묘지 사용이 불가하다고 밝혀 매입 계약금 67억 원의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비용 분담을 놓고 마찰을 빚는 경우도 많다. 공용으로 사용 중인 국유림에 대한 사용료 부과에 대해 산림청과 국방부가 이견을 보이고 있다.
산림청은 국방부가 사용 중인 국유림에 대해 사용료를 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방부는 현재 260여억 원을 내지 않고 있다.
▽참여정부의 조정 시스템 부재=이처럼 갈등과 중복이 많은데 조정이 안 되는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참여정부의 조정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유석춘(柳錫春)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무현 정부는 참여라는 명분 아래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부추겨 놨지만 제각각인 목소리를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이 분권을 표방하면서 특정 집단에 강한 권한을 주지 않고 경쟁하도록 하는 것도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부처들은 철저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리한 계획을 짜고 이를 추진해 갈등과 중복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공직사회에선 참여정부에 대해 ‘주인 없는 정부’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부 부처의 한 간부는 “솔직히 살아남기 위해선 방법이 없다.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부처 간 갈등과 업무 중복은 생길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김동욱(金東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역대 정부와 달리 참여정부에서는 권한 분산에 따라 대통령 중심의 조정 기능이 현저히 약화됐다”고 말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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