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한명숙 카드’ 견제

  • 입력 2006년 3월 23일 03시 04분


새 국무총리 후보로 22일 열린우리당 한명숙(韓明淑) 의원이 유력하게 부상하자 한나라당이 한 의원의 당적(黨籍) 문제를 지적하며 본격적인 견제에 나섰다.

이재오(李在五) 원내대표와 이방호(李方鎬) 정책위의장은 이날 “만약 열린우리당 당적을 가진 인사가 총리가 된다면 국회 인사청문회에 불참하겠다. 차라리 김병준(金秉準) 대통령정책실장이라면 청문회에 불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날 “김 실장은 코드 인사라서 곤란하다. 한 의원의 경우 당적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별문제는 없는 것 같다”며 한 의원을 선호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던 것과는 정반대의 기류다.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이 이날 충남 천안시에서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한 의원이 당적을 이탈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요구는 대통령을 압박하는 오만한 자세다”고 일축한 것이 한나라당을 자극했다고 한다.

이방호 의장은 “여권이 그런 식으로 반응한다면 총리 임명에서 야당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얘기는 뭐 하러 했느냐”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오후 들어 청와대에서도 ‘한명숙 유력’을 기정사실화했던 전날 기류에서 후퇴하는 발언들이 나왔다.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은 오후 2시 정례 브리핑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정책의 연속성을 고려하면 김 실장이 적합하다는 판단이 있는 것 같고 최근의 정치적 분위기를 본다면 한 의원이 좀 더 강점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두 지점에서 계속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여권에서는 속도조절용 단순 발언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노 대통령이 집권 말기에 예상되는 여러 난관을 ‘한명숙 카드’로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진짜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 한명숙의원 주요현안 입장

새 국무총리 후보에 올라 있는 열린우리당 한명숙 의원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특히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대한 2005년 5월 국회 표결 당시 한 의원은 찬성 당론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과의 협상 과정에서 당초 내용이 후퇴했다며 기권했다.

한 의원은 지난해 10월 자신의 홈페이지 ‘해피한 통신’에 올린 글에서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를 ‘독재자의 딸’에 빗대 비판했다.

통일외교안보 현안에 대해서는 ‘자주파’에 가까운 견해를 나타냈다. 2월 이종석(李鍾奭) 통일부 장관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역외 전출시 한국과의 ‘사전 협의’ 조항이 누락됐음을 강하게 따졌다.

미국이 제기하는 북한 위조지폐,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평화 정착의 기운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압박이나 고립으로는 북한 인권의 실질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요 사안에서는 상황에 따라 소신을 유보하는 ‘유연성’을 보이기도 했다. 쌀 시장 개방 불가 입장이지만 지난해 쌀 협상 비준안의 국회 표결 때에는 당론에 따라 찬성표를 던졌다. 2004년 자이툰부대의 이라크 파병 동의안 표결 때도 찬성했다.

새만금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 이해에 따라 소신을 뒤집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 장관 재임 당시 수질 악화 가능성이 있다며 사업 추진 반대의 뜻을 줄곧 피력했지만 2005년 3월 열린우리당 지도부 경선에 출마했을 때는 “새만금 사업은 성공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 김병준실장 주요현안 입장

대통령정책실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정통한 대표적인 참모다. 행정학 교수 출신이면서도 지방분권과 혁신, 양극화 해소 등 현 정부의 정책 이슈 전반에 걸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실장은 성장을 중시하는 이른바 ‘서강학파’와 대립하는 ‘학현(學峴)학파’로 분류된다.

학현은 변형윤(邊衡尹) 서울대 명예교수의 아호. 학현학파는 효율보다 형평,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지만 김 실장은 평소 “두 측면을 함께 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실장의 정책적 색깔은 현 정부의 역점 정책에서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국토균형발전 전략에 대해 그는 “국가균형발전은 단순히 지방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수도권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의 반발을 초래하는 수도권 규제 완화 대신 지방분권을 통한 균형발전 전략만이 수도권의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실장은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투기이익에 대해 다양한 세금을 부과해 환수해야 한다는 방침이다. 이 기조에 따라 지난해 8·31 부동산 종합대책이 마련됐다.

그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아직 8·31대책이 본격 시행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약발’이 다 됐다는 얘기가 있다”며 “이 대책이 시행되면 부동산 문제는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성장과 분배를 함께 고려하는 동반성장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성장에 치우칠 경우 사회적 갈등의 골이 깊어져 이를 메울 사회적 기회비용이 더 증가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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