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6일 현대차그룹 본사에 대한 대규모 압수수색에서 정몽구(鄭夢九) 그룹 회장실까지 압수수색하려 시도하고 정의선(鄭義宣) 기아차 사장 집무실을 실제로 압수수색했다는 것은 검찰 수사의 초점이 어디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검찰, 그룹 최상부 겨냥=현대차그룹 비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는 현재 비자금 조성과 방법, 범위를 규명하는 단계에 와 있다. 비자금을 만들고 사용하는 데 개입한 글로비스와 현대차그룹의 자금담당 임원들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고 있다.
이 같은 수사 흐름은 궁극적으로 글로비스 비자금을 누가 어떻게 왜 조성했는지로 모아지고 있다.
글로비스의 이주은(李柱銀·구속) 사장 한 사람이 수백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수십억 원을 로비자금으로 전달했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검찰은 글로비스의 대주주인 정 사장이 비자금 조성에 개입 또는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이 정 회장의 부속실과 정 사장의 집무실까지 압수수색한 것은 이미 정 회장 부자가 비자금 조성 등에 개입한 정황을 일부 포착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이 정 회장 부자의 비자금 조성 개입 혐의를 밝혀낼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정 사장은 글로비스의 대주주이지만 경영자가 아니어서 비자금 조성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현대차그룹 후계구도에 암초가 될 수도=정 사장은 정 회장을 이어 현대차그룹을 이끌고 갈 후계자의 위치에 있다.
현대차그룹 상장 계열사는 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로 돼 있다. 순환출자 구조에서 중요한 축을 차지하는 계열사가 기아차다.
정 사장이 기아차의 지분을 인수하면 순환출자 구조에 따라 현대차그룹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위해 2001년부터 정 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글로비스에 그룹 차원에서 사업 물량을 전폭적으로 밀어 줬고, 이에 힘입어 글로비스는 급성장했다.
정 사장은 이후 기아차 주식 690만4500주를 사들여 지분을 1.99%로 늘렸다.
이 같은 경영권 승계 시도는 검찰 수사로 암초에 부닥칠 수도 있다.
▽글로비스의 금고에 보관돼 있던 수십억 원의 비자금=검찰은 26일 글로비스를 압수수색해 수십억 원 상당의 달러화와 양도성예금증서(CD), 현금 등을 압수했다.
이주은 사장이 28일 비자금 69억8000여만 원을 조성해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지만 검찰은 이때 압수한 비자금은 이 돈과는 별개의 것으로 보고 있다.
관심의 초점은 이 사장이 비자금을 왜 글로비스 금고에 보관했고, 어디에 쓰려고 한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글로비스의 설립 배경이나 성장사 등에 비춰 보면 그룹 ‘윗선’ 지시에 따른 현대차그룹 전체의 비자금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글로비스는 2001년 2월 설립 당시 정 회장 부자가 100% 출자했고 현재는 정 사장이 최대주주다.
이 때문에 이 비자금이 ‘정 사장에 의한, 정 사장을 위한, 정 사장의’ 자금일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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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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