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이기적 유권자라야 미래 있다

  • 입력 2006년 4월 1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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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유전자(遺傳子)는 원래 이기적(利己的)이라지만 선거에서 유권자(有權者)가 항상 이기적 선택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정당과 후보자의 속임수에 넘어가기도 하고, 제 흥(興)에 겨워 제 발등 찍기도 한다. ‘누구 찍고 이민 간 놈’이 가장 얄밉다는 말도 그래서 나돈다.

20대 청년들은 취직이 힘들고, 장래에 떠안아야 될 나랏빚은 급증하자 “우리가 죄인이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대선(大選)이나 총선 때, 어떤 후보가 일자리 더 만들고 나라살림 더 잘할지 진지하게 따져보고 고민했는지부터 자문(自問)해 볼 일이다.

기권한 50, 60대도 왜 투표장에 안 가고 놀러 갔는지 자책(自責)해야 한다. ‘어르신들은 투표 안 해도 좋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오기(傲氣)로라도 한 표를 살렸어야 했다. 국민 평균수명이 자꾸 길어지니, 앞으로 여러 선거에서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해 줄’ 후보를 뽑지 않으면 말년이 더 심란해지기 십상이다.

5·31지방선거 D-50일이다. 강금실, 오세훈 가상대결이 43.1% 대 41.3%(한국갤럽), 42.0% 대 42.4%(미디어리서치)의 오차범위 내 접전이라는 여론조사 보도가 어제 있었다. 스포츠도 선거도 승부를 점치기 어려울 때 관객은 더 흥미진진해진다.

그러나 선거는 그저 무해무득(無害無得)하고 스릴만 있는 게임이나 드라마가 아니다. 선거에는 개개인의 재테크보다 결정적인 국민의 이해(利害)가 걸려 있다.

특히 대통령중심제에서 대선 결과는 국민 팔자를 엄청나게 바꿔 놓을 수 있다. 역사의 가정(假定)은 무의미하다지만 역대 대선 결과가 뒤바뀌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 모습도 어떤 방향으로든 크게 달라졌을 법하다. 대통령이 의회의 견제를 많이 받는 미국에서조차 2000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앨 고어 후보 간의 승부가 혼미했을 때 양측 지지자들이 험악하게 분열돼 나라가 양분될 지경이었다. 대통령이라는 존재의 영향력을 그만큼 심대하게 인식했기 때문일 터이다.

대선만큼은 아닐지라도 지방선거도 결코 가볍지 않은 선택이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졌더라면 적어도 청계천은 지금도 어둠에 묻혀 있을 것이다. 거꾸로 몇 차례 선거에서 대구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을 차갑게 버릴 줄도 알았다면 대구가 지금보다는 더 발전했을지 모른다.

광역단체장뿐만이 아니다.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도 중요하다. 자질과 능력이 뛰어나고 좋은 의미에서 야심도 있는 구청장은 수만, 수십만 구민에게 ‘내가 이곳에 살기를 잘했지’ 하는 행복감을 안겨 준다. 생각이 트인 시의원이 많은 시는 좋은 조례(條例) 하나라도 더 만들고 기업체 하나라도 더 끌어온다.

누구나 재테크를 하면서 원금(元金)조차 못 건질 투자는 상상하기도 싫을 것이다. 투자의 성공을 위해 주식이건, 펀드건, 집이건, 땅이건 수익률을 꼼꼼히 따진다. 투표도 넓은 의미에서 투자다. 더구나 대통령, 도지사, 군수는 잘못 선택해도 임기 중에 ‘조금만 손해 보고’ 되팔 수조차 없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곧 대선 국면에 접어든다. 대통령의 리더십, 자질과 품성, 국정을 이해(理解)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민생의 구석구석까지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 국민은 체험할 만큼 했다. 국격(國格)과 민격(民格)도 대통령의 품격에 따라 오르내린다.

요즘 미국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에만 가도 예전보다 우리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가 뚜렷하다는 경험담이 많다. 국력과 국격, 국가 리더십이 다 관련 있다. 그러니 국력과 국격을 다시 일으켜 세울 지도자 감을 찾아야 한다. 경제를 살리고 국가의 외교적 위상도 높일 수 있는 대통령을 뽑아야 국민의 행복지수도 올라갈 것이다.

대통령이 세계인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지도자가 번듯해야 국민도 대접 받는다. 우리 국민도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볼 때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를 볼 때 다른 느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 지방선거부터 19세도 투표권이 있다. 권리는 책임이다. 젊은 세대일수록 더 길게 보고 ‘고생 덜 시킬’ 대통령을 뽑을 채비를 해야 한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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