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MBC의 연말 연기, 가요, 코미디 대상 시상식 방송 녹화 테이프 △한국영화 '휘파람 공주', '이중간첩'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가 쓴 '김정일의 요리인' △컴퓨터, 어린이 장난감 등 생필품.
답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아들 김정남이 e메일로 남한에서 활동하던 '간첩'에게 요구한 물품들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에 간첩 혐의로 10일 구속된 대만 출신 화교 정모(67) 씨가 최근 10년 동안 북한 공작원을 통해 북한 고위층에게 건넨 남한 물품에는 남한 시사 월간지와 방송 테이프 등이 많아 눈길을 끈다.
북한 최고위층이 국내 영화와 연예계 및 IT산업 등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이다.
여러 차례 사업에 실패했던 정 씨는 1986년경 대만의 친구 소개로 마카오에서 북한 공작원인 조모(중국동포) 씨를 처음 알게 된 뒤 신분이나 자금 출처를 의심하면서도 중국, 북한과 무역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조 씨와 친분을 유지했다.
국가정보원이 검찰을 통해 청구한 영장에 조 씨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과 연계돼 활동하는 공작원으로 적시돼 있다.
국가정보원이 청구한 정 씨의 영장에는 북한 공작원 조모 씨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과 연계돼 있다고 적시됨.
조 씨는 야후 코리아, 한메일 등 국내 포털사이트에 개설한 e메일 계정을 통해 '김철'이라는 가명을 사용한 김정남과도 e-메일을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 정부 들어 간첩혐의가 적용된 사건은 이번이 3번째.
◇김정남, 한국언론 보도에 신경 곤두세워(?)
정 씨가 2001년 초 국정원이 북한의 해외공작거점으로 지목한 중국 내 Y상사를 통해 조 씨에게 처음 보낸 물건은 국내 전자업체가 생산한 노트북, 데스크톱 컴퓨터였다.
이후 2001년 5월 김정남이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추방당한 사실이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된 뒤 정 씨는 조 씨의 요구로 추방 사실을 보도한 주간지와 월간지를 소포로 보냈다.
당시 언론에는 김정남의 일본 밀입국 사건 전말과 북한의 후계구도와 관련된 보도가 쏟아지고 있었다.
정 씨가 건넨 자료에는 2001년 5월 김정남이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추방당한 사실이 보도된 신동아 월간조선 등 월간지와 시사 주간지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정 씨는 김정남과 관련된 방송 뉴스까지 녹화한 테이프도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또 같은 해 10월 김정남과 관련해 조총련과 야쿠자의 커넥션 의혹을 다룬 월간지와 북한을 집중적으로 다룬 언론사 연감도 구입해 보냈다.
◇IT 분야의 책, 다양하게 수집해 보내
이듬해부터 정씨가 보낸 자료는 정보통신(IT) 분야로 다양해진다.
정 씨는 이때부터 정보 통신 관련 월간지와 백서, 연감, 인명사전 등을 구입해 Y상사로 보냈다. '주문서'는 집에 설치된 팩스를 통해 받았다.
신상옥·최은희 씨 부부가 납북 경험담을 쓴 책자, 반북 활동가인 독일인 폴러첸 씨가 북한의 참담한 생활상을 폭로한 책자 등도 수집 대상이었다.
정보통신분야 책자 중 일부는 판매 총판을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거나 회원에게만 한정 판매해 구입하기가 까다로웠던 것들이었다.
정씨는 또 최신 통신기기,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무선기술 등 전자·통신 관련 책자 21권과 해킹, 컴퓨터 보안 관련 책자 13권도 보냈다.
나중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감의 한글판과 CD, 도로관광 안내도, 세계의 특수부대를 다룬 책자도 수집 목록에 올랐다.
2002년 말에는 Y상사의 요청으로 아예 4종류의 월간지와 여성잡지 정기 구독을 신청하기도 했다.
정씨는 최근까지도 김정일 위원장과 관련된 책과 월간지를 보내다 자신을 추적해온 국정원에 덜미를 잡혔다.
성하운기자 haw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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