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잡지에 내 기사가 실렸네. 조심해야겠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사진)이 2002년 말 중국에 있던 ‘심복’에게 보낸 e메일 내용이다. e메일을 받은 사람은 북한의 해외공작 거점인 ‘와룡연합 무역공사’의 총경리 겸 베이징지사장 조경춘 씨. 중국 조선족인 조 씨는 북한 ‘대외연락부’의 지시를 받고 대만 출신 화교 정모(67·구속) 씨를 포섭해 한국의 국가 기밀 등 각종 자료를 북한으로 보내온 북한 공작원이다.
국가정보원 조사 결과 조 씨는 ‘대외연락부’의 공식 지시 외에 김정남에게서 직접 지시를 받아 여러 건의 ‘주문’을 했던 것으로 11일 밝혀졌다.
▽한국 영화와 방송에 관심 많은 김정남=국정원은 정 씨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조 씨가 국내 모 포털 사이트에 개설한 e메일 계정을 발견했다.
조 씨의 e메일 계정을 압수수색한 국정원은 조 씨가 2002년 6월∼2004년 3월 김정남과 인터넷을 통해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김정남은 조 씨와의 e메일에서 ‘김철’ 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한국 언론 보도도 모니터링?=김정남은 간혹 컴퓨터나 어린이 장난감 등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주된 관심사는 한국 언론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었다.
국내에서 활동하다 10일 구속된 정 씨가 5년 동안 조 씨를 통해 북한에 넘긴 자료 목록을 보면 상당수가 북한 최고위층의 동향과 관련된 국내 언론 보도였다.
2001년 5월 김정남이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추방당한 사실이 한국 언론에 보도된 뒤부터 정 씨는 북한 권력층을 분석한 내용이 실린 신동아 등 국내 잡지를 조 씨를 통해 집중적으로 북한에 보냈다.
김정남의 e메일에는 “한국 잡지에서 나에 관한 기사를 봤다. 매사에 조심해야겠다”는 내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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