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헌금 파문]심사위원들 “돈 싸들고 오는 희망자 많아”

  • 입력 2006년 4월 14일 03시 00분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박성범(朴成範) 의원의 지역구 기초단체장 공천 헌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얘기다. 5·31지방선거의 공천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지난달 말부터 각 정당에는 공천 탈락자들에 의해 ‘금품 거래’ 의혹을 제기하는 제보와 투서가 잇따랐다. 일부 지역에서는 기초의원급도 최소 1억 원 이상을 내야 한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공천 비리가 만연하고 있는 것은 각 당이 정치개혁 차원에서 도입한 상향식 공천이 실종되고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공천권을 시도당에 위임하면서 사실상 국회의원이나 당원협의회장이 제왕적 공천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에 검찰은 “첩보뿐 아니라 단순한 설(說)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서울·수도권 “단체장뿐 아니라 지방의원 로비도 심각”

한나라당 수도권의 한 시도당 공천심사위원인 K 씨는 관할 기초단체장 후보 공천 심사 과정에서 돈을 들고 찾아오는 공천 희망자 3, 4명을 겪었다.

단일 기초단체에 국회의원이나 당원협의회장(과거 지구당위원장)이 2명 이상이고, 그들 간에 서로 미는 후보가 다를 경우 공천 희망자들은 공천심사위원들에게까지 돈 로비 시도를 한다는 얘기다.

K 씨는 “솔직히 뒷감당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돈을 거절했지만 다른 심사위원들도 그랬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서울 중구와 서초구에서 공천 관련 금품 수수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지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특히 공천비리와 관련한 잡음이 심하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인구가 조밀한 수도권에는 1개 기초단체에 의원 또는 당원협의회장이 둘 이상인 지역이 유독 많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사람을 단체장 후보로 공천하려고 경쟁하면서 상대방의 비리의혹과 문제점을 유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수도권에서 우세를 보이고 있는 한나라당의 경우 공천을 희망하는 기초단체장 및 지방의원 예비후보가 지역별로 많게는 10명 안팎에 이르러 혼란이 가중됐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의원(당원협의회장) 1명이 공천 전권을 행사하는 지역은 의원 2명이 갈등하는 지역보다는 아무래도 보안이 잘 지켜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서울 지역의 한 당원협의회장은 “지난해 가을 한 구청장 출마 희망자가 5000만 원을 들고 와 그자리에서 호통을 쳐 돌려보냈다”고 했다. 그러나 이 희망자는 옆 지역구의 당원협의회장을 통해 중앙당 실력자에게 줄을 대는 등 끈질기게 로비를 벌였다고 했다.

경기 용인에서는 한나라당 한선교(韓善敎) 의원이 자신이 반(半)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용인시장 예비후보와 골프를 한 사실이 드러나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한 의원 측은 “옆 지역구 당원협의회장과 용인시장 공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운동을 하기로 돼 있었는데 나오지 않아 급히 S 씨를 대타로 부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유급화로 바뀐 지방의원 공천 로비도 심각하다. 인천에서는 한나라당 서상섭(徐相燮) 전 의원이 지난달 말 인천항만공사가 주관하는 중국 상하이 출장을 떠나며 현 중구의원인 A 씨에게서 2000달러를 받은 혐의가 있어 인천시선관위원회 조사를 받고 있다.

한나라당 인천 남구을 당원협의회장은 지역 유권자 100여 명에게 2달러짜리 지폐를 돌린 혐의로 남구 선관위가 10일 검찰에 고발한 B 씨를 구의원으로 공천해 탈락자들이 반발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에 비해 공천 경쟁이 덜 치열하지만 의원들의 전횡은 별반 다를 게 없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의원들 중에는 공개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막후에서는 자신에게 껄끄러운 후보자를 낙천시키고 자신을 지지하는 후보자를 공천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강구하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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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강원 “대전 열린우리 소속 구청장 전원 탈당 사태”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국민중심당 3당 간 각축전이 치열한 충청권에서는 어느 당 간판을 업느냐를 놓고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이 때문에 금품 문제보다는 후보들의 당적 이동이 봇물 터지듯 하고 있다.

대전에서는 구청장 5명 가운데 2명이었던 열린우리당 소속 구청장이 모두 공천 탈락에 반발해 탈당을 선언했다.

김창수(金昌洙) 대덕구청장은 “나를 18대 총선의 경쟁자로 여긴 김원웅(金元雄) 의원이 자격심사위원회에 입김을 넣어 아예 내 후보 자격을 박탈해 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격심사위는 지역구 의원들과 해당 의원의 심복인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주도하는 모임”이라며 “이들이 서로 타협해 공천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병호(朴炳浩) 동구청장도 이 지역구의 선병렬(宣炳烈) 의원이 자신의 전략공천을 반대하자 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충북도당에선 최근 청원군수 선거에 공천 신청을 했다가 낙천한 김모 씨의 지지자들과 청년당원 300여 명이 공천 철회를 요구하며 사무처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충남에서는 국민중심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던 이시우(李時雨) 보령시장이 “지역 국회의원이 특정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는 불공정 경선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강원에서도 유종수(柳鍾洙) 춘천시장이 7일 시장후보 공천에서 탈락하자 중앙당에 이의 신청서를 제출해 후유증이 예상된다.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호남 “민주 특별당비 명목 거약 제공” 제보 잇따라

열린우리당이 강세인 전북에서는 열린우리당과 관련한 공천 잡음이, 민주당이 강세인 광주 전남에서는 민주당과 관련된 공천 비리 의혹 소문이 파다하게 떠돌고 있다.

전북의 한 기초단체장 후보로 전략 공천된 A 씨는 현재 검찰에서 뇌물수수 건으로 내사를 받고 있어 공천을 취소해야 한다는 제보가 중앙당에 접수됐다.

전북의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자택 앞에서는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출마 희망자들이 면담을 요구하면서 진을 치고 기다리는 풍경이 벌어진다. 한 초선 의원은 “막무가내로 차 안에 돈 봉투를 던지고 가는 사람도 있어 이제는 아예 만남 자체를 피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민주당은 13일 전남의 한 군에 조사단을 급파했다. 자체 조사 결과 군수 후보로 잠정 결정된 인사가 도의원 예비후보들에게서 수천만 원씩의 돈을 걷은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광주 전남에서는 민주당 기초단체장 후보 공천을 받으려면 1억∼10억 원, 광역의원 공천을 받으려면 3억 원가량을 내야 한다는 설까지 퍼져 있다. 전남지역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J, Y, S 기초단체의 경선 과정에서 현금이 오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지방선거 국고보조금이 19억 원에 불과해 대표단회의에서 특별당비 모금을 결의했는데, 몇몇 조직책이 공천 대가로 거액을 받았다는 제보가 잇따라 접수돼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영남 “부산선 한나라 구청장-의원 자리 맞바꾸기도”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에서는 한나라당 쪽이 집중적으로 공천로비 의혹에 휩싸여 있다.

한나라당 곽성문(郭成文·대구 중-남) 의원은 자신의 측근이 공천 대가로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현재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대구시의원 출마 예정자 신모 씨는 곽 의원 측에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12일 구속됐다.

오근섭 경남 양산시장은 지난달 30일 울산지검 공안부에 불구속 입건됐다. 오 시장은 2월 말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나라당 경남도 공천심사위원 등에게 지역 사찰주지의 서화 10점을 전달하는 등 공천로비를 벌인 혐의로 선관위에 의해 고발됐다.

13일에는 양산지역 공천과 관련해 경남도당 관계자 4800여 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밀실, 정략공천으로 일관한 한나라당을 탈당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나라당 소속 대구시의원 5명은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한나라당 결별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공천심사위원회는 허수아비로 전락했고 금품 향응 제공을 통한 공천 비리로 주민들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산에서는 수차례 한나라당을 탈당한 적이 있는 모 구청장 후보가 한나라당 공천권을 따내자 당원들이 “해당 행위를 밥 먹듯이 한 사람을 공천한 데에는 흑막이 있기 때문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다.

부산 수영구에서는 지역 운영위원장의 힘으로 현역 구청장과 시의원이 서로 자리를 맞바꿔 공천을 받는 이른바 ‘회전문 공천’이 이뤄졌다. 동래구에서도 현역 구청장이 지역 운영위원장과의 불협화음으로 공천에서 배제됐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대구=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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