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14일 제시한 수로 측량 수역은 울릉도 동쪽 30∼40해리 지점으로 독도와 매우 가까운 해역까지 포함한다. 이 문제가 한일관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로 측량 강행 시 사태 심각=일본이 이 같은 계획을 밝힌 것만으로도 한일관계는 요동을 칠 것이 분명하다. 한일 간에 EEZ 경계선 협정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이긴 하지만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의 중간선이 양국 간 EEZ 경계선’이라는 자국의 주장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한국 측 EEZ를 침범하려는 의도가 분명하게 읽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정부는 청와대에서 관계 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대책회의를 열어 신속하고 강력한 반응을 보였다. 만일 일본 측이 수로 측량을 무단으로 강행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게 뻔하다. 그러면 정부는 해양과학조사법에 규정된 정선, 검색, 나포 등을 포함한 실력 저지를 불사할 것이란 게 당국자의 설명이다.
한일 양국 정부가 이날 벌인 날카로운 공방을 보면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관방장관은 한국 정부가 일본 측에 강력히 항의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수로 측량 대상 지역이 일본 측 EEZ 구역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국 측이 무언가 조치를 취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국 외교통상부는 대변인 논평을 내고 “아베 장관의 발언은 국제법을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일본은 불법적 계획을 즉각 철회해야 하며 이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고 반박했다.
▽일본 보수우경화 바람과 관련=한국 정부는 이번 사태를 한일 간 3대 악재인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역사왜곡 교과서 문제, 독도 영유권 분쟁과 유기적으로 연관된 문제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독도 주변 탐사계획은 3월 말 일본 문부과학성이 내년도 고교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명기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나온 것이다. 앞서 일본 시마네(島根) 현은 지난해 3월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이번 수로 측량 계획은 그 연장선상에서 치밀하게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계획이 처음 실렸던 일본의 ‘수로통보(水路通報)’라는 잡지를 한국 정부가 입수한 뒤 진위 확인에 들어가자 일본 정부가 즉각 공식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 그 증거다.
이와 관련해 차기 일본 총리감으로 거론되는 아베 장관이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최근 지지율이 주춤하고 있는 아베 장관이 자민당의 보수 의원들과 재계, 일본 국민의 정서를 자극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난해 9월 자민당이 총선에서 압승한 이후 본격화하고 있는 보수 우경화 바람과 ‘아베 총리 만들기’ 전략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일본 측의 움직임을 볼 필요가 있다.
다만 일본도 수로 측량 계획에 독도 주변 12해리 영해는 제외하는 등 한국과의 정면 대결로 비치는 데는 부담을 느끼는 측면도 있어 향후 태도가 주목된다.
아베 장관은 “일본과 한국 간에는 서로가 주장하는 EEZ가 중복되는 해역이 존재하고 이번에 해상보안청이 수로 통보를 행한 구역은 그 해역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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