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14일 ‘경악할 사안’이라고 예고한 폭로 건의 실체가 드러난 16일 오후 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이렇게 말하며 침통해했다.
열린우리당 측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곧 경천동지할 중대 사건이 공개된다”며 바람을 잡았다. 오전 11시 반 서울 영등포구 열린우리당 중앙당사 2층 회의실에서는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인 임내현(林來玄) 당 법률구조위원장이 폭로 관련 회의를 주재했고, 낮 12시쯤 대변인실 관계자는 “12시 45분 기자회견이 있으니 점심식사를 미뤄 달라”고 기자들에게 요청했다.
낮 12시 45분, 법률구조위 소속 안민석(安敏錫) 의원이 회견장에 나타나 “이 시장이 ‘잘 모르는 사이’라고 했던 선병석 전 서울시테니스협회장이 사실은 이 시장과 특수 관계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선 씨가 2003년 10월 경기 가평군에서 30대 중반의 모 대학 성악과 강사 등 여성들을 대동해 주선한 ‘별장 파티’에 이 시장이 참석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경찰서장 출신으로 당 지방자치단체비리조사단장인 우제항(禹濟恒) 의원이 “한나라당 박맹우(朴孟雨) 울산시장의 선거에 도움을 준 인사가 45억 원 사기 사건으로 울산지검에 고발돼 있으나 수사가 지지부진하다. 이를 대검찰청에 수사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시장 관련 ‘폭로’는 열린우리당이 1개월 전부터 제기한 ‘테니스’ 논란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새삼 경악할 것은 없는 내용이었다.
이 시장 측이 “열린우리당의 주장은 기본 사실 관계가 틀린 허위 폭로”라고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으로 볼 때 제대로 된 검증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선 씨도 한나라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안 의원이 2주 전쯤 ‘테니스 동호회 야유회에 연예인이 참석했느냐’고 묻기에 ‘성악가인 교수를 포함해 여자 선수 출신 몇 분이 같이 간 적은 있다’고 했다”며 “그걸 이렇게 확대할지는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박 시장 관련 사건은 이미 울산지검에 고발이 접수된 것으로 절차에 따라 수사하면 되는 사안이다.
당연히 기자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기자들이 “이게 국민이 경악할 사안이냐”고 따지자 열린우리당 측은 “김 원내대표가 밝히려 했던 사안이라고만 이해해 달라”고 했다. 안 의원은 이 시장의 ‘별장 파티’가 왜 문제인지를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채 “여성들이 참석했다면 추측해 볼 수 있지 않느냐”며 “기사를 잘 쓰는 것은 언론인의 몫”이라고 하는 등 ‘선정적 추측 기사’를 써 달라는 투의 무책임한 답변을 되풀이했다.
기자들의 논박이 이어지자 두 의원은 도망치듯 기자실을 떠났다. 기자회견을 지켜본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은 ‘경솔하게’ 중대 폭로를 예고한 김 원내대표에게 화살을 돌렸다.
우상호(禹相虎) 대변인은 “김 원내대표가 ‘국민이 경악할 만한’이란 표현만 쓰지 않았더라면…”이라고 원망했다. 대변인실 관계자들은 기자실을 돌며 “여당이 코미디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며 “잘 봐 달라”고 부탁하고 다녔다.
한 초선 의원은 “누가 소설가 출신 아니라고 할까봐 경악할 만한 비리를 만들려 했다”고 김 원내대표를 겨냥해 비아냥댔다. 한 소장파 당직자는 “김 원내대표 사퇴론이 나올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수도권의 한 재선 국회의원은 “모처럼 선거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었는데 무분별한 폭로로 정치 혐오만 가중시키게 됐다”며 “이런 네거티브 공세는 우리 당의 지지층인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율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당 지도부의 ‘무(無)전략’을 비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與 vs 이명박-박맹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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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 vs 전원주택=열린우리당은 2003년 경기 가평군에서 이 시장이 여성들과 함께 술파티를 열었다고 주장하며 이 시장에 대한 공세를 취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강승규(姜升圭) 홍보기획관은 “2003년 행사는 정례적인 테니스 동호인 간의 야외 친목모임이었다”고 반박했다. 서울테니스협회 선병석 회장 등 동호인 15∼20명 가운데 여성 동호인이 6, 7명 있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들 여성은 테니스 동호인 모임 총무인 안모 씨를 비롯해 대학 교수 부인, 성악과 강사 등인데 어떻게 이들과 쌍쌍 파티가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이 시장이 선 회장과 파티를 벌일 정도로 ‘특수 관계’라고 주장하자 서울시 측은 “테니스 동호회에서 만난 것 외에 무엇이 특수한 것인지 궁금하다”고 반문했다.
열린우리당이 파티를 벌였다고 주장한 별장은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의 전원주택이다.
이 전원주택의 소유자는 현대 고위 간부 출신 6명과 이 시장의 처남인 김모(사업) 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이 시장 측은 공짜 테니스 논란과 관련해 선 회장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답했던 것은 평소에 테니스를 치면서 ‘선 회장’이라고 호칭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이권 개입 vs 사실무근=열린우리당의 박 시장에 대한 비리 의혹 폭로는 크게 두 가지다. 운수업자 주모(47·미국 도피) 씨가 박 시장과의 친분을 내세워 울산 국립대 건설 예정지를 미리 알 수 있다며 투자자들에게서 45억 원을, 문수체육공원 및 울산대공원의 판매시설 낙찰가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며 업자들에게서 금품을 받아 챙겼다는 것이다.
주 씨가 2002년 지방선거 당시 박 시장을 도운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박 시장이 충분히 주 씨의 뒤를 돌봐 줬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실제 주 씨는 박 시장과의 친분을 내세워 2003년부터 주변 인사들에게 “박 시장을 통해 국립대 설립 용지의 위치를 알 수 있다”며 투자자 10여 명에게서 투자금을 챙겨 2004년 12월 미국으로 달아났다. 피해자들은 지난해 1월 주 씨를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울산시는 두 공원 수익시설이 공개경쟁을 통해 매각됐기 때문에 사전 낙찰가 결정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울산시는 “울산대공원 수익시설은 예상 수입이 연간 1억1300여만 원으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낙찰가가 무려 4억700여만 원으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울산지검도 울산대공원 민간위탁시설 운영비 횡령과 탈세 혐의로 주모 씨를 2004년 7월 구속 수사했으나 혐의를 밝혀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 국립대 설립 용지 선정과 관련해서도 울산국립대학설립 후보지 선정위원회와 정부 산하 울산국립대학설립위원회의 최종 확정 등의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박 시장이 개입할 소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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