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재단’출범…“현정부 자주 - 자립환상서 깨어나라”

  • 입력 2006년 4월 27일 03시 03분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뉴라이트운동의 의미와 방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이훈구 기자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뉴라이트운동의 의미와 방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이훈구 기자
“뉴라이트 운동은 한국 사회의 사상적 주류를 이루고 있는 자주노선에 대항해 대외협력노선을 추구하는 사상입니다.”

뉴라이트 운동의 상설 싱크탱크를 지향하는 ‘뉴라이트재단’의 이사장을 맡은 안병직(安秉直) 서울대 명예교수는 26일 서울 중구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뉴라이트 운동의 향후 목표를 민족주의적 자주노선에 대항한 글로벌리즘(국제주의)으로 천명했다.

“근대화 민주화에 성공한 한국의 다음 목표가 선진화라는 것에 합의 및 동의가 이뤄졌습니다. 또 선진화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토대로 이뤄야 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 합의됐습니다. 문제는 이게 추상적이고 막연하게만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뉴라이트사상 운동이 해야 할 일은 여기에 구체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주 자립 자위라는 환상을 깨고 글로벌리즘 속에서 자유민주주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안 교수는 서구의 자유주의운동과 한국의 뉴라이트 운동의 차이점을 한국 근현대사라는 구체적 현실 인식에서 찾았다.

“대한민국은 출범부터 자주와 자생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국제관계 속에서 출발했고 대외 협력 관계를 통해 안보와 경제성장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사상적 주류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이를 자주노선의 결핍이라고 매도하고 대외 협력을 대외 종속이고 제국주의와의 타협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자주노선을 가장 잘 구현했던 북한을 보십시오.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를 주장했던 결과가 지금 어떻습니까.”

안 교수는 민족주의 자주노선을 강조하던 좌파 경제학자에서 시장옹호론자로 변신한 학자다. 그는 1980년대 운동권의 주요 이론이었던 한국 사회가 미국과 일본에 종속됐다는 ‘식민지 반(半)봉건사회론’의 주창자였다. 그는 1970년대 말 한국 자본주의가 내부 모순으로 붕괴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1980년대 한국의 비약적 경제성장에 직면하자 자신의 이론을 깨끗이 포기하고 이를 중진자본주의의 성공이라고 설명했다.

한때 제국주의 비판의 선봉장이었던 안 교수가 주장하는 글로벌리즘의 핵은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을 포함하는 ‘한미일 동맹’이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자주니 자립이니 자꾸 강조하는데 이게 결국 한국이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걸어 온 노선을 흔드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대중(金大中)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 공조와 한미동맹이 한국 대외 관계의 양대 수레바퀴라고 주장하는데 이 두 바퀴는 방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둘이 조화를 이뤄 제대로 굴러가기 위한 선결 조건이 북한의 핵·미사일 포기와 개혁 개방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지금처럼 핵무기를 고수하고 선군(先軍)정치를 지향하는 한 한국의 대외 관계 전체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1980년대 ‘강철서신’으로 유명한 주사파 이론가였다가 북한을 다녀온 뒤 전향해 잡지 ‘시대정신’으로 북한체제를 비판해 온 김영환(金永煥) 씨가 함께했다. ‘시대정신’은 여름호(5월 중순 발간 예정)부터 뉴라이트재단의 기관지로 전환한다. 김 씨는 “안 교수님은 대학 다닐 때부터 존경해 왔는데 ‘시대정신’을 뉴라이트사상 운동의 기관지로 만들자는 제의를 받고 흔쾌히 동의했다”며 “안 교수님이 발행인을 맡게 되고 저를 포함한 기존 편집위원들은 실무를 맡는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기존 보수세력에도 쓴소리

26일 열린 뉴라이트재단 설립 추진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인사들. 왼쪽부터 안세영 서강대 교수,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하진오 전 동원증권 부회장,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안병직 교수는 이날 현 집권세력과 기존 보수세력 모두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그는 “집권세력은 오늘날의 자유와 번영이 국제적 관계 하에서 개발과 협력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간과하고 한국 근현대사를 침략과 저항의 역사로만 규정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한국의 번영은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을 통해 미국의 자유민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이식한 결과물인데 민주화세력이 ‘역사바로잡기’니 하며 이를 부정하는 것은 한국을 여기까지 끌고 온 철길을 걷어내고 새로운 철길을 깔겠다는 자기 오만의 결과라는 것.

그는 독도 문제와 관련해 “독도는 이미 우리가 영유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가 무력도발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 영토다. 우린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독도 하나 때문에 한일관계 전부를 다 덮어 버릴 수 있다고 나서는 것은 무책임하다. 이 정부가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보니 이런 쓸데없는 일로 장난질을 친다”고 비판했다.

안 교수는 또 “한국의 기존 보수주의는 한나라당의 차떼기 문제와 같은 부패로 덧칠돼 있기 때문에 더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의 올드라이트는 권위주의와 산업화세력에 연원을 두고 있어 자유주의 개혁을 하려면 자기부정을 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뉴라이트는 독재, 권위주의, 부정부패에 맞서 싸운 민주화 운동 출신 인사들이 핵심이며, 사상적으로는 공산주의까지도 논의가 허용되는 다양한 사회를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 어떤 사업 추진하나

뉴라이트재단의 설립은 그동안 뉴라이트 운동을 이끌어 온 ‘전향한 386 주사파 세대’와 학계의 ‘안병직 사단’의 결합을 의미한다.

뉴라이트 운동은 2004년 11월 신지호(申志鎬) 홍진표(洪進杓) 최홍재(崔弘在) 씨 등 1980년대 주사파 운동권이었다가 반북활동가로 변신한 지식인들이 중심이 된 ‘자유주의연대’가 출범하면서 본격화했다. 자유주의연대는 이후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뉴라이트 싱크넷, 교과서포럼,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등 다양한 운동단체와 연합해 ‘뉴라이트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후 뉴라이트 네트워크의 사상적 자원을 제공한 그룹은 자유주의연대 소속 지식인들과 김영호(金暎浩·성신여대) 김종석(金鍾奭·홍익대) 교수 등 학계 중진학자들로 구성된 뉴라이트 싱크넷 소속 학자들로 양분할 수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안병직 교수가 참여하면서 안 교수가 설립한 낙성대경제연구소 출신의 이대근(李大根·성균관대) 이영훈(李榮勳·서울대) 교수 등이 동참하게 된 것.

뉴라이트재단은 출판 정책연구 교육 등 3대 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기관지인 ‘시대정신’의 발행인은 안 교수가 맡고 편집위원으로는 이대근 이영훈 교수 외에 소설가 복거일(卜鉅一) 씨, 이상돈(李相敦) 중앙대 법대 교수, 자유기업원 이춘근(李春根) 부원장 등도 참여한다.

이 재단은 안세영(安世永·국제경제학) 서강대 교수를 중심으로 주요 분야별 구체적 정책대안을 제시할 정책연구소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 연구소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작은 정부, 교육의 자율화, 세계화와 지역화가 결합된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북한 인권 등에 대한 정책 대안을 제시해 이를 2007년 대선의 핵심 의제로 부상시킨다는 계획이다.

현재 뉴라이트를 표방한 그룹은 뉴라이트 네트워크 말고도 김진홍(金鎭洪) 목사가 이끌고 있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있다. 여기에 박세일(朴世逸) 서울대 교수와 서경석(徐京錫) 목사가 주도하는 선진화국민회의도 비슷한 성향으로 분류된다.

안 교수는 “3개 그룹이 서로의 개성을 살려가며 저마다 사상적 모색을 하다 보면 언젠가 하나로 합쳐질 날이 올 것”이라며 “그러나 서로 성과를 내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 것이 좋지 억지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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