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로믹 로스앤젤레스 이민법원 판사는 지난달 27일 탈북자 서재석(40) 씨에 대한 재판에서 서 씨의 망명을 승인한다고 결정했다.
이민국을 대표하는 변호사도 항소를 포기함에 따라 서 씨의 망명은 사실상 확정됐다. 서 씨는 1년 뒤 미국 영주권 신청 절차를 밟을 수 있으며 영주권을 받은 뒤 5년이 지나면 미국 시민권도 신청할 수 있다.
북한 국적의 탈북자에게 미국 망명이 승인된 경우는 그동안 몇 차례 있었지만 일단 한국에 정착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자에게 미국 망명이 승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판결이 미국 내 다른 한국 국적 탈북자들의 망명 신청 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특히 최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탈북자 가족을 직접 면담하고 제이 레프코위츠 북한인권특사가 “북한 난민들의 미국 정착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바 있어 미국의 탈북자 정책 변화가 예상되는 시점이다.
미국 정부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의 경우 이미 한국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정착하기 어려운 절박한 사유가 있거나 중요한 정보 제공자에 대해서만 망명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현재 부인과 두 자녀와 함께 로스앤젤레스에 머물고 있는 서 씨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단수여권을 발급받아 2003년 미국으로 출국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모든 지원금이 끊겼다며 “이민 법원에서도 이런 정황들을 감안해 망명을 승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 씨의 망명 사건을 대행한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프로젝트’ 소속 강은주 변호사도 “이번 결정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 씨와 유사한 10여 건의 재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 변호사는 “모든 사례는 개별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될 것”이라며 지나친 기대를 경계했다.
서 씨는 “로스앤젤레스에 40∼50명, 뉴욕에 20∼30명의 탈북자가 망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직 100명은 안 되겠지만 앞으로 (로스앤젤레스 지역으로) 많이 밀려들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 서재석 씨는
북한군 중위였던 서 씨는 1996년 폭발사고로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고 군에서 제대한 뒤 1997년 중국 국경을 넘어 아들(당시 3세)과 함께 탈북했다.
중국으로 건너간 서 씨는 단속을 피해 돌아다니다 베트남으로 가게 됐고 하노이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뒤 캄보디아를 거쳐 라오스로 갔다.
이후 태국에서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중재로 1998년 8월 한국에 도착했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탈북 여성과 결혼해 딸까지 낳은 서 씨는 2003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들어갔다.
서 씨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이 교사에게서 폭행을 당했는데 내가 그 사실을 확인하려고 하자 그 교사는 내게 ‘탈북해서 공짜로 얻어먹는 주제에…’라고 말했다”며 “그 순간 더는 한국에서 살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고 미국행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서 씨는 “나는 북한에서 바로 미국 국민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국민인지를 의심케 하는 한국의 탈북자 차별 정책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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