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탈북자정책 변화 신호탄?…서재석씨 정치적 망명 첫 허용

  • 입력 2006년 5월 1일 03시 03분


“한국은 약속의 땅 아니었다”지난달 2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이민 법원으로부터 망명 승인을 받은 탈북자 서재석 씨와 서 씨의 두 자녀. 현재 부인 및 두 자녀와 함께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 머무르고 있는 서 씨는 “한국은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미주한국일보
“한국은 약속의 땅 아니었다”
지난달 2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이민 법원으로부터 망명 승인을 받은 탈북자 서재석 씨와 서 씨의 두 자녀. 현재 부인 및 두 자녀와 함께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 머무르고 있는 서 씨는 “한국은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미주한국일보
한국 국적을 취득한 북한군 장교 출신의 탈북자에게 미국 법원이 사상 처음으로 정치적 망명(Political Asylum)을 승인했다.

제프리 로믹 로스앤젤레스 이민법원 판사는 지난달 27일 탈북자 서재석(40) 씨에 대한 재판에서 서 씨의 망명을 승인한다고 결정했다.

이민국을 대표하는 변호사도 항소를 포기함에 따라 서 씨의 망명은 사실상 확정됐다. 서 씨는 1년 뒤 미국 영주권 신청 절차를 밟을 수 있으며 영주권을 받은 뒤 5년이 지나면 미국 시민권도 신청할 수 있다.

북한 국적의 탈북자에게 미국 망명이 승인된 경우는 그동안 몇 차례 있었지만 일단 한국에 정착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자에게 미국 망명이 승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판결이 미국 내 다른 한국 국적 탈북자들의 망명 신청 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특히 최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탈북자 가족을 직접 면담하고 제이 레프코위츠 북한인권특사가 “북한 난민들의 미국 정착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바 있어 미국의 탈북자 정책 변화가 예상되는 시점이다.

미국 정부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의 경우 이미 한국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정착하기 어려운 절박한 사유가 있거나 중요한 정보 제공자에 대해서만 망명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현재 부인과 두 자녀와 함께 로스앤젤레스에 머물고 있는 서 씨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단수여권을 발급받아 2003년 미국으로 출국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모든 지원금이 끊겼다며 “이민 법원에서도 이런 정황들을 감안해 망명을 승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 씨의 망명 사건을 대행한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프로젝트’ 소속 강은주 변호사도 “이번 결정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 씨와 유사한 10여 건의 재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 변호사는 “모든 사례는 개별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될 것”이라며 지나친 기대를 경계했다.

서 씨는 “로스앤젤레스에 40∼50명, 뉴욕에 20∼30명의 탈북자가 망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직 100명은 안 되겠지만 앞으로 (로스앤젤레스 지역으로) 많이 밀려들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 서재석 씨는

북한군 중위였던 서 씨는 1996년 폭발사고로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고 군에서 제대한 뒤 1997년 중국 국경을 넘어 아들(당시 3세)과 함께 탈북했다.

중국으로 건너간 서 씨는 단속을 피해 돌아다니다 베트남으로 가게 됐고 하노이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뒤 캄보디아를 거쳐 라오스로 갔다.

이후 태국에서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중재로 1998년 8월 한국에 도착했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탈북 여성과 결혼해 딸까지 낳은 서 씨는 2003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들어갔다.

서 씨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이 교사에게서 폭행을 당했는데 내가 그 사실을 확인하려고 하자 그 교사는 내게 ‘탈북해서 공짜로 얻어먹는 주제에…’라고 말했다”며 “그 순간 더는 한국에서 살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고 미국행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서 씨는 “나는 북한에서 바로 미국 국민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국민인지를 의심케 하는 한국의 탈북자 차별 정책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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