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 법안 25분만에 일사천리로 강행처리

  • 입력 2006년 5월 2일 18시 08분


4월 임시국회 회기 마지막 날인 2일 본회의를 앞두고 국회 의사당 주변은 여야간 힘겨루기로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미리 본회의장을 '장악'하고 법안처리를 강행하려는 열린우리당과 이를 극력 저지하려는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 사이에 고성과 욕설, 몸싸움이 오가는 충돌이 계속됐다.

그러나 이날 본회의에 직권상정된 6개 법안은 불과 25분만에 김덕규 부의장의 사회로 '일사천리'로 처리됐고 한나라당의 '저항'은 이렇다할 위력을 발휘하지 못해 양당의 대치는 다소 싱겁게 막을 내렸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간의 물리적 충돌은 본회의 시작 30분전 최고조에 달했다.

본회의장 주변을 에워싼 열린우리당은 오후 1시30분 국회 경위가 본회의장 정문을 개방하자 대기중이던 소속 의원들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입장시켰다. 열린우리당 당직자들 사이에서는 "이제 됐다" "민노당 파이팅" 등의 격려성 구호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한나라당 의원과 당직자 50여명이 스크럼을 짜고 곧바로 진입 시도에 나섰고 이를 열린우리당측이 저지하면서 약 8분간에 걸쳐 양당 의원과 당직자 200여명이 한데 뒤섞인 격렬한 몸싸움이 전개됐다.

그러나 본회의장 입구를 건장한 체구의 열린우리당 의원 수행비서나 운전기사 수십여명이 봉쇄하고 있는 터라 한나라당으로서는 역부족이었다.

○…국회 부의장실이 소파 등으로 복도까지 완전 차단된 상태에서 김원기 의장으로부터 사회권을 넘겨받은 김 부의장은 오후 1시20분 갑자기 본회의장에 모습을 나타내 '신출귀몰'하다는 말을 들었다. 김 부의장은 전날 귀가하지 않고 국회 의장실에 밤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김덕규 부의장이 사회권을 넘겨받을 것에 대비해 밤새 김 부의장의 소재를 찾기 위해 난리법석을 벌였지만 그를 찾지 못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1일 오후 6시부터 김 부의장의 집과 지역구 사무실, 국회 의원회관 등을 모두 뒤졌고 오후 10시경엔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김 부의장의 차량을 뒤¤았지만 김 부의장이 차를 돌려 추격을 따돌렸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2일 오전 김 부의장을 1시간 안에 찾아오라고 역정을 내 한나라당 보좌진이 여의도 인근 호텔을 모두 뒤졌으나 실패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당초부터 국회의장실과 부의장실 주변 통로를 열린우리당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며 "김 부의장의 신변보호는 그야말로 물샐틈없는 '007 작전'의 성공이었다"고 평했다.

○…김 부의장이 오후 2시를 약간 넘겨 본회의 개의를 선언하려고 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의결정족수가 안된다'고 판단하고 곧바로 퇴장, 맞은 편 예결위 회의장에서 긴급 비공개 의원총회를 소집하고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이에 김 부의장이 "본회의를 개의하겠다"고 선언하고 도시 및 주거환경보호법 개정안을 상정, 법안요지 설명 절차에 들어가려고 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일제히 회의장에 입장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곧바로 김 부의장이 앉은 의장석 연단으로 향했고, 이를 저지하려는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멱살잡이와 고성, 욕설이 오가는 격렬한 몸싸움에 돌입했다.

○…이날 본회의장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법안 강행처리에 거칠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여야 의원 사이에 욕설과 막말이 오가면서 일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김 부의장을 향해 서류뭉치를 내던지며 법안처리 저지를 시도했다.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은 김 부의장쪽을 가르키며 "정신병자들이야"라고 외쳤고, 일부 의원들은 "이런 새끼들이 다 있어", "열린우리당) 이 사기꾼같은 놈들, 다 해 먹어라"는 등의 막말을 쏟아냈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흥분한 상태에서 10분 이상 몸싸움을 하며 의장석 진입을 시도하면서 김 부의장에게 "내가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내려와 너, 이리와 김덕규 내려와"라고 반말로 외쳤다.

이 소란으로 회의 진행이 어려워지자 김 부의장이 "이재오 원내대표의 충정은 이해한다"고 '응수'한 뒤 표결을 계속 진행했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은 본회의 개의 10여분전 왼쪽 쪽문을 통해 본회의장에 진입하려다 유리창이 깨지는 바람에 오른손을 부상했다.

진 의원은 잠긴 유리문을 거칠게 두드리다 유리가 깨지면서 오른손이 3군데 1~1.5㎝ 가량씩 찢어졌으며 국회 의무실에서 간단한 응급처치만 받은 뒤 곧바로 본회의장 표결 저지에 동참했다.

○…본회의에서 법안 제안 설명에 나선 의원들은 신속한 표결을 위해 각각의 법안에 대한 간단한 제안 설명만 한 뒤 자세한 내용은 단말기 자료로 대체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과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 등 3·30 부동산 후속 대책 관련 2개 법안과 주민소환제법 등 6개 법안을 처리하는 걸린 시간은 총 25분. 건당 4분 남짓 걸린 셈이다.

첫번째 안건인 도정법이 처리되는 데는 불과 2분도 걸리지 않았으며, 한나라당이 가장 민감해 하는 주민소환제법 처리과정에서는 한나라당의 강력 반발로 시간이 5~6분 가량 걸렸다.

당초 이날 처리될 법안은 총 7건이었으나 우선순위에 밀려 마지막 안건으로 잡혀있던 임대주택법 개정안은 처리되지 못했다.

김 부의장은 "부동산 관련 입법 2개는 처리했다. 임대주택법은 3.30 후속입법은 아니다"면서 "의사진행 과정에서 이재오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이 너무 강하게 항의해 주요 법안의 정상적 처리가 힘들어 우선순위에서 임대주택법을 제외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민주당의 본회의장 출현에 '허'가 찔린 듯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본회의 시작 직후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 몇 명이 빠져 의결정족수가 미달된 것으로 착각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모두 퇴장했으나 곧바로 민주당 의원 7명이 뒤늦게 출석한 것을 눈치채고 허겁지겁 본회의장에 다시 들어가 표결 저지에 나섰다.

민주당은 당초 부동산 대책 법안 처리를 6월로 미루자는 입장이었으나 민생법안임을 감안, 막판 고심끝에 본회의 참석을 결정했다.

그러나 강행처리의 '일등 공신'이 된 민주당은 본회의가 끝난 뒤 여당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논평을 발표해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민주당은 본회의 직전 열린우리당에 "문화중심도시특별법을 직권상정해 주면 본회의에 참석하겠다"고 제안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베이지색 치마 복장으로 본회의장에 등장한 박근혜 대표는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박 대표는 "아침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우리는 (본회의장에) 의결정족수가 안 돼서 나왔던 거다. 민주당에서 절대 참석 안 한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다 끝났는데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허탈해 했다.

이날 일부에서는 박 대표가 '전투복'이 아닌 치마 입고 나타난 것은 일단 직권 상정을 막기는 하되 몸싸움을 펼치는 것은 피하자는 분위기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해석도 나왔다. 한나라당이 법안 성격 상 몸으로 막았다간 역풍이 불 것을 우려한 때문이 아니었느냐는 것이었다.

○…한나라당은 오후 1시반경 심한 몸싸움 속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모두 입장하며 국회 본회의장 문이 열리자 뒤따라 회의장에 입장했다.

의장석에는 이미 김덕규 부의장이 착석해 있었고 민노당 의원들과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착석한 상태로 의장석 주변에 열린우리당의 남성의원들이 포진했다.

오후 2시 본회의가 시작되려 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의결정족수가 안 된다"는 판단 아래 모두 퇴장해 바로 옆 예결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열려고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민주당 의원들의 표결 참여로 정족수를 채웠을 뿐 아니라 첫 번째 표결이 통과됐다는 소식에 크게 당황했다.

일부 의원들이 "법안이 통과되고 있는데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것이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본회의장으로 뛰쳐 들어갔다. 그리고 단말기로 투표하려는 의원들을 몸으로 막아 방해했다. 그러나 표결은 오후 2시반경 40분만에 법안들의 표결이 모두 완료됐음.

○…본회의가 종료되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개새끼"라고 욕을 하 "잘 해처먹어라, 오래오래 처먹어, 이 사기꾼 같은 놈들아, 이 기본도 안 지키는 더러운 놈들아"라며 분풀이했다.

안경률 원내수석부대표는 "오늘 오전에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으며 의결정족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안 될 가능성도 있어 계속 희망적인 쪽으로 생각하고 의원들에게 이야기해왔다. 앞으로 어떻게 할 지는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예결위회의장으로 이동해 비공개 의원총회 열었다.

○…열린우리당은 법안 통과 뒤 의원 총회를 갖고 열띤 분위기를 연출했다.

정동영 의장은 "최선을 다해 죽기살기로 결심하면 통할 길이 있다는 결의 우리는 해냈다"며 "민생 입법, 결제를 살리는 법은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이룬다는 힘과 원칙을 이번에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욕을 먹더라도 일을 하는 여당, 여당다운 여당, 힘있는 여당으로 거듭나서 5·31 향해 진군하자"고 말했다.

정 의장은 또 "민생을 외면한 한나라당의 오만이 심판당한 것"이라며 "부동산 대책 입법 찬성에 한명도 이름을 못올린 당이 한나라당이며, 독도 수호조차 반대하고, 정당 주민소환제에 반대한 유일한 정당"이라며 본회의 처리를 반대한 한나라당을 강하게 비난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1시반 의원총회 열어 본회의에 참석하기로 당론을 결정했다.

민주당 측은 직권상정되는 법안은 민주당이 주장해온 것이고, 민생 관련 법안이어서 본회의에서 참석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에서 이정일, 이승희 의원 등 8명이 본회의에 참석했다.

성하운기자 haw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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