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실력저지 불사' 으름장을 놨던 기세와는 달리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이 이날 본회의에서 법안을 일사천리로 표결처리하는 데도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다.
고함도 질러댔고 삿대질도 해대는 등 완전히 뒷짐을 진 것은 아니었지만, 법안 통과를 반드시 막아나겠다는 '절박함'은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표는 지난해 12월9일 여당에 의한 사학법 개정안강행처리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날도 치마 차림으로 국회에 나와 '전투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이런 정황 때문에 당초부터 한나라당의 최종목표는 실력저지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원기 국회의장이 1일 관련법안의 국회 본회의 직권상정 수용을 밝혔을 때 한나라당이 소속 의원 및 당직자를 총동원, 본회의장을 재빨리 선점만했더라도 이처럼 무기력하게 강행처리를 허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이런 맥락이다.
당시 박근혜 대표와 이재오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와 원내대책회의를 잇따라 긴급소집했지만 정작 의원들에게는 국회주변 대기령만 내렸을 뿐, 적극적인 동원령은 내리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을 '실력 저지'의 명분으로 내걸기는 했지만 실제 통과를 저지해야 하는 대상이 부동산투기억제관련 법안과 외국투기자본의 국부유출을 막는 법안이란 점에서 심적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또 당 지도부는 열린우리당이나 민주, 민노당 의원 3명 정도의 본회의장 진입만 막아도 의결정족수가 안 되기 때문에 걱정할게 없다고 장담했지만 실제로는 이를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다.
다소 이율배반적으로 비쳐지는 한나라당의 이런 행동에는 이번 국회에서 '날치기를 당하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긍정적' 여론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국회의 잦은 소란에 식상해 있는 유권자들에게 여당의 '독주'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면 목표는 달성하는 것이라는 게 한나라당 일부의 시각이란 지적이다.
그러나 소수의 의견이기는 하지만 당 지도부의 완전한 판단 미스 내지 방심이 부른 '사고'였다는 해석도 있다.
이재오 원내대표가 사학법 문제와 관련한 노무현 대통령의 '여당 양보' 발언을 철석같이 믿은 나머지 여당이 설마 민생법안을 강행처리할까라며 그 가능성을 낮게 판단했다는 것이다.
또 민주당은 조재환 사무총장의 구속 등 최근 여권과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민노당은 비정규직법안 때문에 여당과의 공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전략 부재'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성하운기자 haw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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