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영호]미국發 對北인권 태풍 심상찮다

  • 입력 2006년 5월 3일 03시 00분


미국 워싱턴에서 북한을 향해 불어오는 인권 태풍이 심상치 않다. 최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탈북자 및 일본 납북자 가족들을 백악관에서 만났으며 그 자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납치를 부추기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재작년 북한인권법안을 통과시킨 미국 의회는 북한 인권 청문회를 개최하고 열악한 북한의 인권 실태를 국제사회에 고발했다. 지난주 미국 법원은 사상 처음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자에게 미국으로의 정치적 망명을 승인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탈북자의 미국 정착을 위한 법적 물꼬를 텄다. 삼권분립이 엄격한 미국에서 행정, 입법, 사법부 모두 북한 인권 문제에 공동전선을 펴고 나선 사실에 비추어볼 때 앞으로 미국발(發) 대북(對北) 인권 태풍의 강도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미국이 낳은 위대한 국무장관 존 퀸시 애덤스는 세상에 깡패 같은 지도자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들을 일일이 손봐 주겠다고 나서는 것은 미국 국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애덤스의 현실주의적 외교노선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면 인권 외교를 통한 개입주의적 정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현실주의적 국익 외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상주의적 인권 외교를 그 수단으로 때때로 동원했다. 그 경우 미국 인권 외교의 대상이 되었던 국가의 독재체제는 교체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자체가 붕괴된 경우도 많았다.

미국이 한반도를 향해 인권 태풍을 본격적으로 불러일으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첫 번째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인권외교를 내세워 한국의 유신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했을 때이다. 카터는 박정희 정부에 대한 압력의 일환으로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를 참모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결정했을 정도였다. 카터는 당시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으면서도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을 지킴으로써 이중 잣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카터의 대한(對韓) 인권 외교는 한미관계를 위기로 몰아넣었고 유신체제의 종말을 가져오는 데 기여한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였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인권 외교는 두 번째 인권 태풍으로서 쉽게 사그라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우선 이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온 한미관계가 심상치 않다. 납북자 및 대북 인권 문제에 관한 한 부시 행정부는 남북관계를 고려하는 신중한 접근을 요구해 온 노무현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세여서 한미관계에 적신호가 켜졌다.

특히 노 정부는 납북자 문제와 관련하여 정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미국의 전방위적 대북 인권 압박정책에 대해 속도 조절을 요구할 수 있는 외교적 명분을 상실했다. 16세의 나이에 납치된 김영남 씨를 비롯한 고교생 5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정부는 가족들에게 그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김 씨 납치 사건은 5공화국 말기 박종철 씨 고문치사 사건보다 더한 폭발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 죄 없는 고교생이 납치되어 북에 생존해 있음이 확인되었는데 어떻게 국가가 손을 놓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점은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노 대통령은 이러한 비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카터 이후 또다시 인권 외교의 칼을 빼든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북-미관계를 긴장으로 몰고 갈 것이다. 최근 미국의 정책은 북한이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금융제재와 인권 외교를 통해 북한체제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가 국제적으로 공론화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만 뚜렷한 원칙과 구체적 전략 없이 대응함으로써 미국으로부터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국제사회의 외톨이로 전락하고 있다. 한미관계의 복원과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라도 노 정부는 북한 인권 및 납북자 문제와 관련하여 기존 입장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김영호 객원논설위원·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 youngho@sungshin.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