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마음 편하게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을 만들어 주는 후보를 뽑을 거예요.”
김령영(39·미용실 운영·서울 구로구) 씨는 아이가 2004년 어린이집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은 이후 ‘어린이집 부모연대’를 만들어 좋은 음식 먹이기 운동을 벌여 왔다.
김 씨는 이번 지방선거를 맞아 자신이 운영하는 미용실에 인사차 찾아온 후보자들에게 ‘좋은 어린이집 만들기’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성과가 없자 어린이집 부모연대의 공동대표를 출마시켰다.
▽각 후보의 키티맘 잡기=각 정당의 주요 광역단체장 후보들은 키티맘의 마음을 사로잡을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2002년 지방선거의 공약에 비해 이번 선거의 공약은 실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열린우리당 강금실(康錦實) 서울시장 후보는 희망하는 모든 초등학교에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을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한나라당 오세훈(吳世勳) 서울시장 후보는 1개 동에 1개의 보육시설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열린우리당 진대제(陳大濟) 후보는 예체능 문화학교, 어린이 영어학교, 어린이 복습학교를 운영해 공교육을 강화하겠다고 공약했다. 한나라당 김문수(金文洙) 후보는 맞벌이 부모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놀토(노는 토요일)’에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버스 학교’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쾌적한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아이디어도 나왔다. 6세 미만 신생아의 40%가량이 앓고 있다는 ‘아토피’를 방지하기 위해 민주노동당 김종철(金鍾哲) 서울시장 후보는 시립병원-보건소-민간병원을 연계해 아토피 클리닉을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키티맘을 무시하면 큰코다친다=아이들이 앓는 구체적인 병명까지 각 후보 진영의 공약에 대거 등장하기는 이번 지방선거가 사실상 처음이다.
키티맘은 상대적으로 같은 연령대의 남성에 비해 투표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후보 개인의 노력에 따라 표를 흡수할 수 있는 비당파적 투표 성향을 뚜렷하게 지니고 있다. 또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표시하면서도 지역 여론에 따라 쉽게 투표 성향이 바뀌는 특성도 지니고 있다.
서울대 정치학과 안청시(安淸市) 교수는 “키티맘 세대는 교육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 자식들에 대한 교육, 건강, 환경, 범죄, 교육환경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공약을 내는 지방선거에서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한다”고 분석했다.
한 광역단체장 후보 진영 측은 “키티맘은 구체적인 공약에 따라 반응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면서 “키티맘은 비당파적 경향을 띠면서 거대 담론보다 생활의 실익을 따지기 때문에 이번 지방선거에서 그들의 요구 사안을 직접 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갈수록 커지는 키티맘=73개 여성단체의 연합체인 ‘생활자치 맑은정치 여성행동’은 각종 여성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의 ‘11대 여성 정책 가이드라인’의 1∼3번까지의 정책은 보육, 교육, 급식 등 키티맘 세대의 관심사다.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목소영(睦昭瑛) 기획부장은 “젊은 주부들의 정치의식과 지역 현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여성단체에서도 그들의 몫이 커지고 있다”며 “학교 주변의 유해시설 제한 문제나 스쿨존 등 교육 문제는 이제 키티맘 세대 주부들이 포함된 지역 여성단체가 전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지방선거에서 키티맘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강원택(康元澤) 교수는 “과거에는 정당이 앞장서 여성 정책을 제시하고 유권자가 이에 따라가는 형국이었지만 이제는 전문성을 겸비한 여성 유권자들이 정책을 요구하는 상황으로 바뀌었고 이는 ‘정책선거’로 이어지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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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주부 마음은 주부가 잘 알죠” 잇단 출사표▼
“어떤 집안이든 며느리가 잘 들어와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금천구의 맏며느리가 돼 살림을 꾸려보겠습니다!”
2일 오후 4시경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한 아파트 단지. 금천구 의원 선거에 출마한 황완숙(黃完淑·35·한나라당) 예비후보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민영이 엄마 아냐?” “선거 나왔다더니 정말이네.”
반찬을 사들고 집으로 가던 주부들은 황 후보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19세 때 결혼해 17년차 주부인 황 후보는 지난해 아들이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배식을 하다 급식비를 내지 않은 아이들이 점심을 먹지 못하고 돌아서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 무상 급식을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황 후보는 “직접 발로 뛰면서 알뜰하게 지역살림을 하는 것은 주부가 적임”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지방선거에 직접 뛰어든 ‘키티맘’ 후보가 적지 않다. 이들은 교육·복지 등 생활과 밀착된 공약을 내세워 지역 주민들의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서울 은평구 의원 선거에 출마한 장우윤(張又潤·32·열린우리당) 예비후보는 학부에서 정치외교학,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낸 뒤 지방선거에 뛰어들었다.
결혼 3년차인 장 후보는 “살림을 하면서도 선거 자원봉사, 정치관련 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며 “‘주부가 무슨 정치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능력과 경험이 충분한 전문직 주부’라고 대답한다”고 말했다.
장 후보는 “남성 후보들은 교통, 토지개발 같은 큰 공약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육 지원을 위한 예산 5% 확보’, ‘앵봉산 산책로 개발’ 등 일상생활을 파고드는 공약을 내걸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신광영 기자 sky@donga.com
▼‘키티맘’이란…키티인형과 자란 2030 주부▼
올해 초부터 학계, 재계, 광고업계에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사이의 기혼 여성을 일컫는 ‘키티맘’이란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인터넷 1세대이자 이른바 ‘X세대’인 키티맘은 어머니가 되면서 당당하게 자신을 표출하고 있으며 가정과 사회의 기존 인간관계마저 바꿔 나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키티맘이 △교육에 대한 높은 관심 △합리적인 소비성향 △적극적인 정치 사회 참여 등의 특징을 보인다고 분석하고 있다.
키티맘은 1974년 만들어진 인형 캐릭터 ‘키티’와 함께 자란 세대이며, 일반적으로 남자와 평등한 교육 혜택을 누려 대졸 이상 학력자가 많다. 25∼34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1983년 38.5%에서 2003년 55.3%로 크게 늘었다. 키티맘 세대는 약 300만 명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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