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60년 독일에 건너가 공부하고 1999년에 대학에서 정년퇴직했습니다. 내가 관찰한 독일은 주로 20세기 후반기의 독일, 통일 이전의 독일, 그리고 통일이 된 뒤 베를린으로 천도하기 이전의 이른바 ‘본 공화국(Bonner Republik)’입니다.
저는 독일 제2공화국, 특히 1949년부터 1999년까지의 ‘본 공화국의 50년’이 1000년 독일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가장 생동적인, 그리고 가장 생산적인 시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의 제2공화국보다 정치적으로 더 안정되고 대외적으로 더 많은 우방에 둘러싸이고 경제적으로 더 번영하고 정신적 도의적으로 더 활기가 넘친 독일의 다른 역사시대가 또 있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본 공화국은 또한 수많은 ‘위대한 독일인’을 배출했습니다.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의 ‘서방정책’의 완성과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의 태동을 다 같이 현지에서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라인 강의 기적’도 그 시절에 목도했습니다.
제가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국토가 분단되고 민족이 분리되고 정치 이념 체제가 분열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본 공화국’의 발전에 발목을 잡는 커다란 장애 요인은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국토분단의 극복’보다 ‘민족분리의 극복’을 위해 ‘예측 가능한 미래의 통일’을 단념하면서 추진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非)통일정책’이 독일 통일을 앞당겼다는 것은 현대사의 절묘한 역설입니다.
같은 분단국가이면서도 한국은 독일과는 판이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서독이 ‘통독부’를 없애 버린 1969년 바로 그해 한국은 비로소 국토통일원을 신설하고 지금까지 민관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합창해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통일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한반도에서는 ‘통일정책’이 ‘비통일’을 조장하고 있다고도 보겠습니다. 불행히도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지식인, 특히 진보적(?) 지식인들의 ‘통일지상주의’를 더욱 고조시키고 그것은 다시 최근에는 한미 간의 동맹보다 남북한 간의 ‘민족공조’를 우선한다는 ‘신민족주의’에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통일지상주의를 신봉하는 이들 ‘사이비 진보적’ 지식인들은 일종의 ‘세속적 원죄론’을 신봉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면 오늘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노정되는 모든 문제, 이 시대의 모든 비리와 부조리, 비극과 불행은 모두가 남북한의 ‘분단 상황’에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그들 담론의 핵심 개념이 ‘분단시대’ 또는 ‘분단체제’라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오직 통일이 이뤄져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분단은 악, 통일은 선’이라는 이런 단순화된 도식에는 통일만 되면 자유와 평등,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는 미래가 약속돼 있다는 신앙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독일 현대사에 감사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입니다. 먼저 소극적인 차원에서는 통일을 선취한 독일이 통일은 곧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의 단방약(單方藥)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늘의 ‘베를린 공화국’을 통해 예시해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더 적극적인 차원에서는 통일 이전의 독일 제2공화국은 분단 상황에도 불구하고 독일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大)시대를 열었고, 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어제의 ‘본 공화국’을 통해 예시해 주었다는 점입니다. 본 공화국은 베를린 공화국을 위한 전 단계거나, 과도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자기완결적인 훌륭한 역사시대였습니다.
저는 오늘의 대한민국도 분단 상황임에도 한민족의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적으로 민주화되고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있는 대시대를 열어 놓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역사학자 레오폴트 랑케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시대는 저마다 신(절대자) 앞에 직접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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