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는 유력 인사들의 이름이 적힌 ‘김현재 리스트’까지 나돌고 있어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큰 파장이 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다.
▽30억 원이 뇌관?=1990년대 말 기획부동산업에 뛰어든 김 씨는 5개 계열사를 통해 2001년 256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후 매출은 매년 큰 폭으로 늘어 2004년 이후엔 연간 1000억 원을 넘었고 5년간 총매출액은 5318억 원이었다.
검찰이 확인한 횡령액은 245억 원이다. 김 씨가 대부분 개인적 용도로 썼으나 30억 원은 행방이 묘연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김 씨는 2003년 초부터 양도성예금증서(CD)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CD는 무기명이어서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음성적인 정치자금이나 뇌물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검찰 관계자는 “김 씨가 돈세탁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며 30억 원의 종착지를 밝히기 위해 수사를 확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로비 명목 사용?=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민주당 경기도지부 국정자문위원을 지낸 김 씨는 최근까지 열린우리당 민생경제특별위원을 지냈다. 그는 지난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자문위원이자 전남 부의장으로 활동한 공로로 국민훈장모란장을 받았다.
김 씨가 최근 5년여 동안 피해자들에게서 여러 차례 고소고발을 당하고도 대부분 무혐의 처리됐을 뿐만 아니라 승승장구했다는 점에서 정치권에서는 무성한 소문이 돌고 있다.
그는 호남 출신 정치인이나 지방자치단체 고위 인사 등과 두터운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씨는 검찰에서 정관계 로비설 등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30억 원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김현재 리스트’의 명단도 친분이 있는 정치인과의 약속을 기억하기 위해 달력에 이름을 적어 놓았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검찰 관계자가 전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 씨 회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명단은 달력에 적힌 정치인 10여 명이 전부”라고 말했다.
김 씨가 지자체나 정부 부처, 정치인 등을 상대로 개발 인허가 청탁 명목으로 로비자금을 뿌렸을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사들인 땅을 투자자를 모집해 비싼 가격에 파는 게 전부여서 정관계 청탁이 사업상 별로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 김현재 회장은
전남 영암 출신인 김현재(47) 삼흥그룹 회장은 1980년대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일하다 대규모 땅을 싼값에 사들여 100∼1000평 단위로 쪼개 소액 투자자들에게 비싼 값에 되파는 기획부동산이란 새 방식을 도입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 계열사만 10여 개로 늘리며 급성장했다. 삼흥그룹의 임직원들은 잇따라 독립해 기획부동산업체를 차려 삼흥그룹은 ‘기획부동산 사관학교’로 불리기도 했다.
김 씨는 소년소녀가장과 결식아동을 돕는 등 활발한 자선사업을 펼쳤다. 지난해 10월에는 천정배(千正培) 법무부 장관, 김상현(金相賢) 전 민주당 의원 등과 함께 법무부가 마련한 ‘제1회 소년원학생 국토순례 대장정’ 해단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가 정치권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2004년 1월. 김경재(金景梓) 당시 민주당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김 씨가 대표로 있는 삼흥그룹이 노무현(盧武鉉) 대선 후보 캠프에 영수증 없이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자료가 있다”고 폭로했다. 김 전 의원은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2004년 김 씨에 대해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적이 있으나 법원은 이 영장을 기각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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